"우리 집에서는 '지령'이라고 하는 것을 다른 아이들은 '간장'이라 했고, '젓무'를 딴 아이들은 '깍두기'라 했다." 서울 토박이 국어학자 정양완은 초등학생 때 지방 사투리를 처음 들었다. 요즘엔 '간장'과 '깍두기'를 아무도 사투리라고 하지 않는다.
국립국어원은 1988년 표준어 규정을 '교양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이라고 했다. 국어원은 '이전의 서울 토박이말에 여러 지역의 말이 섞여 형성된 것'이라고 풀이했다.
▶염상섭은 서울서 태어나 서울에서 세상을 떴다. 그의 장편 '삼대'는 1930년대 서울 토박이말과 생활 풍속을 듬뿍 담고 있다. '그댓말'(어떤 일을 두고 하는 말'), '켯속'(일이 되어가는 속사정), '질번질번하다'(넉넉하다) 같은 서울 사투리가 감칠맛 나게 쓰였다.
▶해방둥이 작가 최인호는 "4대문 안에서도 가장 중심지인 중구에서 태어난 서울깍쟁이"라면서도 서울 토박이말로 글을 쓰진 않는다. '가면서'를 '가면서럼'이라고 하거나 '하니까' 대신 '하니까는'으로 쓰진 않는다. '도시 감수성'을 다룬 작가가 굳이 서울 사투리를 쓸 까닭이 없었다. 서울 사투리는 오늘날 신세대 '서울깍쟁이'에겐 다른 지방 사투리와 같다.
▶지난 12일 서울 성동구청에서 '2010년 서울말 으뜸 사용자 선발대회'가 열렸다. 서울 토박이 스물한 사람이 스스럼없는 사투리로 어린 때를 돌이켰다. '쨍아'(잠자리) '즘심'(점심) '맹들다'(만들다) 같은 서울말이 쉴 새 없이 튀어나왔다. 서울 토박이말 특징은 '아'를 '어'로, '어'를 '으'로 발음한다. 된소리, 거센소리가 없는 서울말을 처음 듣는 다른 지역 사람들은 '깍쟁이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서울이 고향인 시인 윤석산은 '깍쟁이'의 설움을 노래했다. '갱상도 전라도 모두 한두 차례씩 세상을 뒤잡고 흔들 때/ 대통령도 한 번 못낸 서울, 서울 사람들/ 그래설라문에/ 겉똑똑이 속미련이 서울사람은/ 정말로 깍쟁이도/ 못 된답니다.' 염상섭 이후 서울말을 잘 살린 소설은 찾기 어렵다. 지역 문인들은 제각각 사투리로 맛깔나게 우리말을 살리는데 서울에선 그런 일이 드물다. 서울 토박이 어르신들이 아직 살아계실 때 '서울내기'들이 사투리를 지키고 전하는 일에 힘써 나서야 한다. '깍쟁이'처럼 뒤로 빼다간 언젠가 표준어 사전에서 서울 토박이말은 가뭇없이 사라질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