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에 국가 외교 사절로 청나라의 수도 연경(燕京·지금의 베이징)을 방문하는 것을 '연행(燕行)'이라고 했다. 연행의 횟수는 1637년부터 1893년까지 250여년간 478회에 이르렀다.
연행은 조선에 큰 영향을 끼쳤다. 연행 사신들이 남긴 일기 등 연행록만 300여종이 넘는다. 특히 사신단에 참여했던 실학자들은 연행을 통해 새 인식을 갖게 됐다. 이들을 통해 서양의 서적과 천주교, 세계 지도 등 서학(西學)이 들어 왔다.
경기도 남양주시 실학박물관(관장 김시업)이 내년 2월 28일까지 열고 있는 《연행, 세계로 향하는 길》은 연행을 주제로 한 국내 최초의 전시다. 연행의 의미를 문화사적 의미에서 조명하는 42건 53점의 유물이 선보인다.
가장 주목되는 유물은 영조(재위 1724~1776년)가 할아버지 현종의 탄신 120주년을 기념해 1760년 11월 동지사행단에 그려오게 한 '심양관도첩(瀋陽館圖帖·명지대박물관 소장)'이다. 현종은 조선 역사에서 유일하게 타국 땅 심양에서 태어난 왕이다. 병자호란 후 청에 볼모로 가 있던 봉림대군(효종)이 심양에 머물렀고 여기서 맏아들인 현종이 태어났다.
청나라 문인 이당과 여원이 실학자 유득공을 위해 당나라 때의 시를 검은 종이 바탕에 금분으로 쓴 '모우심국서(冒雨尋菊序·과천시 소장)', 박지원이 청나라 건륭제의 칠순 잔치에 가는 도중 열하의 문인들과 사귀고 명사들과 교유한 뒤 쓴 '열하일기(熱河日記·실학박물관 소장) 등도 눈길을 끈다.
이번 전시의 특징은 연행을 동아시아 지식과 문명의 만남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한 것이다. 조선시대 연행록과 연행도 등을 중국·베트남·일본 등의 사행 자료와 비교 전시해 연행의 의미를 동아시아적 시각에서 조명한다. 또 실학자들이 남긴 연행시·송별시 등을 전시해 '연행문학'이라는 장르를 이해하도록 했다. 20일에는 '영상으로 보는 연행노정'이란 주제로 신춘호 한중연행노정답사연구회 대표의 영상 강연회도 진행된다. (031)579-6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