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국부펀드인 중국투자공사(CIC)는 지난 5월 캐나다의 오일샌드 업체인 펜 웨스트(Penn West)와 설립한 조인트 벤처에 투자, 캐나다 앨버타주 피스강 유역의 오일샌드를 개발하기로 결정했다. CIC는 7억9000만달러를 들여 조인트 벤처 지분을 인수했다. 캐나다는 오일샌드를 포함하면 사우디아라비아 다음으로 많은 매장량을 보유한 산유국이다.
지난 2008년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글로벌 인수합병(M&A) 시장은 큰 타격을 받았지만, 중국에는 오히려 기회였다. 그동안 선진국을 중심으로 대다수 국가는 중국의 에너지 확보를 꾸준히 경계했다. 하지만 유동성 위기를 겪으면서 중국 자본에 대한 경계심은 서서히 허물어졌다.
지난 2007년 만들어진 CIC는 위기감이 최고조에 달했던 지난해 중순부터 에너지 관련 해외 기업 공략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CIC는 자원 관련 기업 지분을 인수하거나 조인트 벤처를 설립하는 방식으로 에너지 자산을 확보하고 있다.
CIC는 작년 7월 캐나다 최대 비금속 생산업체인 테크 리소시스(Teck Resources)의 지분 17.2%를 15억달러에 인수했다. 이는 중국에만 유리한 계약이 아니었다. 테크측은 CIC의 투자가 결정된 후 중국의 5대 제철소에 제철용 석탄을 공급하게 됐다. 투자한 쪽이나 투자받은 쪽이나 모두 윈윈(win-win)한 셈이다.
3개월 후인 10월에는 카자흐스탄의 국영 에너지 기업 카즈무나이가스(KMG)에 9억3900만달러를 투자, 지분 11%를 인수하는 작업을 마무리했다. 중국 석유화학기업 시노펙의 이라크 2위 가스 기업 인수가 좌절된 후 이뤄낸 쾌거였다. CIC는 같은 달 러시아 석유기업 노벨오일 그룹의 지분 45%를 3억달러에 매입하기로 결정했다.
CIC의 가장 큰 무기는 막대한 자금력이다. 중국의 막대한 외환보유고는 중국투자공사의 든든한 돈줄이다.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 집계에 따르면 지난 9월말 기준으로 중국의 외환보유고는 2조6480억달러에 달한다. CIC는 올해 5000억달러를 해외투자에 쏟아붓는다는 계획이다.
비단 중국만이 아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지나가고 세계 경제 회복 흐름에 힘입어 글로벌 인수합병(M&A) 시장이 되살아나자 세계 각국의 국부펀드들은 풍부한 현금을 앞세워 투자 대상을 물색 중이다.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투자 대상 기업들의 몸값이 낮아진 것도 이유다.
금융정보 제공업체인 톰슨로이터에 따르면 지난 2분기 국부펀드를 포함한 국영 투자기관의 인수합병(완료기준) 규모는 총 125억달러로 1분기에 기록한 11억달러를 크게 웃돌았다. 이 가운데 국부펀드가 직접 뛰어든 인수합병 규모는 120억달러가 넘는다. 국부펀드의 인수합병 규모는 지난 3분기 92억달러를 기록하며 다소 주춤했지만, 여전히 활발하다.
국부펀드들은 자원 확보를 목적으로 한 기업 인수합병에 특히 눈독을 들인다. 지구상 자원은 제한적인데 전 세계 인구는 증가하고 각국의 경제활동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자원 부족 현상이 중·장기적으로 볼 때 필연적인 상황이 될 수 있다는 위기감은 선진국과 개도국 가릴 것 없이 공통적으로 작용한다.
풍부한 오일머니를 내세운 중동 국부펀드도 예외는 아니다. 세계 최대 국부펀드인 아부다비투자청(ADIA)은 멕시코만 원유 유출로 위기에 처한 BP의 주식 10%를 매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브라질 현지언론에 따르면 카타르투자청(QIA)은 브라질 국영에너지회사 페트로브라스(Petrobras)에 대한 지분 참여 의사를 올해 초 브라질 정부에 전달한 상태다.
자원 선점을 위해 선발주자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사이 뒤늦게 국부펀드를 만들어 인수합병 시장에 뛰어 드려는 후발주자들도 적지 않다.
인도에서는 국부펀드 설립에 대한 논의가 무르익고 있다. 인도 석유부는 국영기업들의 해외 에너지 투자 지원을 위해 현재 2540억 달러에 달하는 외환보유액의 일부로 국부펀드를 설립할 것을 재무부에 요청한 상태다. 인도는 해외 자원 선점을 위한 경쟁에서 중국에 밀려 최근 잇따라 패배했다. 국영기업인 인도석유공사(ONGC)는 이라크와 알제리 유전 개발프로젝트 입찰에서 중국으로 인해 쓴잔을 마셨다. CIC가 지원하는 중국 기업들의 자금 공세를 견뎌내지 못한 탓이다.
대만 정부는 싱가포르 테마섹과 같은 국부펀드를 설립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대만 정부는 자산 관리를 통해 높은 수익을 거둘 수 있는 투자회사나 위원회 형태의 기관 설립 방안에 대한 보고서를 올해 말까지 제출해 줄 것을 전문가들에게 의뢰한 상태다.
일본 여당인 민주당은 외환보유액을 바탕으로 국부펀드 설립을 제안하고 나섰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민주당은 지난 6일 576억달러의 경기 부양안을 공개하면서 국부펀드 창설을 요청했다. 세계 2위의 외환보유액을 가진 일본은 중국, 한국, 싱가포르 등 외환보유액 상위 국가들과 달리 국부펀드를 아직 가지고 있지 않다. 만약 국부펀드 설립이 승인을 받으면 일본은 선진 7개국(G7) 중 처음으로 국부펀드를 가진 나라가 된다.
컨설팅업체 모니터그룹의 빅토리아 바바라 애널리스트는 “투자처를 다변화하려는 국부펀드들의 움직임이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며 “에너지 기업에 대한 투자는 부동산·금융부문과 함께 국부펀드 투자 전략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