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오후 3시 서울 구로구 고려대 구로병원에서 막 수술을 마친 정형외과 서승우(47) 교수가 서둘러 병원을 빠져나갔다. "국제세미나 참석 때문에 5시엔 공항으로 출발해야 하니 그전에 아이들을 봐야 한다"며 걸음을 재촉했다.
병원 후문에서 50m 거리에 있는 '민들레 쉼터'에 들어서자 서 교수를 본 10여 명의 10대 환자들이 휠체어를 밀며 반갑게 다가섰다. 서 교수는 휠체어에 앉은 손동환(18)군의 굽은 다리를 살폈다. "여기가 아프니? 여기는?" "거긴 괜찮아요."
손군의 다리를 주무르고 통증 부위를 확인한 서 교수는 곁에 있는 이진주(15)양과 젠가(Jenga) 게임을 했다. 5㎝ 길이의 나뭇조각들을 쌓은 탑이 무너지지 않게 하면서 아래에서 한 조각을 빼 맨 위에 올리는 게임이다. 그는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근육에 힘이 없어 작은 동작도 하기 어려운 환자들을 위한 놀이 치료"라고 했다.
척추측만증은 근육에 힘이 빠지는 근질환으로 인해 근육이 척추를 지탱하지 못하고 몸이 좌우로 휘는 병이다. 근질환을 앓는 어린 환자들이 10세쯤 체중이 불면서 척추측만증에 걸린다. 환자들은 걷기 어려워지고 호흡장애까지 갖게 된다. 대부분 10대 청소년인 환자들은 학교나 병원에 가는 것도 보호자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다.
서 교수는 지난 5월 이 '민들레 쉼터'를 열었다. 서 교수는 "2007년 어느 날 급우들이 장난을 친다며 학교 옥상에 버려두고 가버리는 바람에 몸을 잘 가누지 못하는 초등학교 4학년인 척추측만증 환자 아이가 밤늦게까지 옥상에서 움직이지 못하고 두려움에 떨었다는 얘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보호자에게 늘 업혀 다니는 어린 환자들이 무릎 연골에 이상이 생기는 것을 보고 병원과 집, 학교 사이에 아이들이 머물면서 치료도 받을 수 있는 쉼터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는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다른 일을 할 수 없는 보호자들을 위해서도 쉼터가 절실했다"고 했다.
서 교수는 틈나는 대로 쉼터를 만들기 위해 뛰어다녔다. 그는 "병원 근처에서 척추측만증 환자를 위한 시설을 만들겠다고 하니 장애인들이 드나들면 안 된다며 임대를 거절하는 건물주가 많아 애를 먹었다"고 했다. 건물 임대료는 서 교수가 내고 쉼터 공사와 장비는 '인터알리아 공익재단'의 지원을 받았다. 쉼터에는 운동치료사와 사회복지사를 상주시켜 아이들이 물리치료와 호흡 재활치료를 받을 수 있게 했고, 게임을 통한 놀이치료와 컴퓨터 교육도 한다. 매주 토요일이면 해군 재경근무지원단 병사들이 찾아와 아이들에게 영어와 논술을 가르쳐 준다.
이 쉼터 말고도 서 교수는 2007년 8월부터 '움직이는 진료실'을 만들어 전국을 돌아다니며 척추측만증 검진을 하고 있다. 척추측만증은 빨리 검진만 하면 보조기 착용이나 수술로 상태가 악화하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인터알리아공익재단과 의료기 업체 GS메디컬의 후원을 받아 디지털 엑스레이 촬영장치(DR)가 부착된 25인승 버스를 타고 수술과 외래진료가 없는 월요일마다 전국 곳곳의 특수학교와 복지시설을 돌아다니며 검진을 한다. 서 교수의 '움직이는 진료실'이 지금까지 찾아간 특수학교와 복지시설이 120여 곳이나 된다.
민들레 쉼터를 이용하는 환자 보호자인 이숙미(43)씨는 "바쁘신 교수님이 자주 찾아와 그저 감사할 따름"이라고 했다. 척추측만증 환자 김현석(17)군은 "학교에서는 늘 혼자인데 쉼터에서는 또래 친구들과 함께 게임도 할 수 있어 아주 좋다"며 활짝 웃었다. 보호자 이우연(46)씨도 "50㎏이 넘어 들기도 어려운 아이를 학교·병원으로 매일 업고 다녀야 해 너무 힘들었는데, 쉼터 때문에 부담을 크게 덜었다"고 서 교수에게 고마워했다.
하지만 서 교수는 '민들레 쉼터'가 아직 부족한 게 많다고 했다. 그는 "많은 환자가 이용할 수 있도록 더 넓은 공간을 확보하고 싶다"며 "쉼터를 찾는 아이들에게 입시교육 대신 마음의 양식을 쌓는 역사·문학 교육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