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문 감독

프로야구 감독, 남자라면 한번쯤 해볼 만한 직업입니다. 선수와 코칭스태프를 합쳐 많게는 100명에 달하는 장정들을 이끌고 전장을 누비는 장수 아닙니까. 자신의 손짓 하나에, 콜 한 마디에 선수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입니다. 생각만 해도 뿌듯하고 멋진 일이죠. 자, 여기까지가 팬들의 생각입니다.

그들을 바로 옆에서 자주 대하다 보면 생각이 좀 달라집니다. 물론 부러울 때도 있지만 감독들이 "나랑 맞바꿀래?" 한다면 고개 젓고 싶을 때가 더 많습니다.

두산 베어스를 출입하던 2007년 시즌, 두산이 연패 중이던 어느날이었습니다. 그날따라 잠실구장에 늦게 도착한 저는 황급히 1루측 두산 덕아웃으로 갔습니다. 가보니 김경문 감독은 없고, 기자들만 옹기종기 앉아 있더군요. 한 기자가 "오늘은 감독이 할 이야기가 없다면서 잠시 앉아있다 들어가 버렸다"고 전했습니다.

그래도 명색이 담당기잔데 감독 얼굴 안 볼 수야 있나요. 감독실로 찾아갔지요. 유리문 틈으로 들여다 보니 감독실 의자에 웬 '브론즈 흉상'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더군요. 심호흡 한번 하고, 문을 10㎝만 연 뒤 얼굴을 빼꼼히 들이밀었지요. 김 감독이 피식 웃더니 손짓으로 들어오라고 합니다.

거대한 고무풍선 속에 단 둘이 앉아 있는 기분. 이런 때일수록 명랑한 어조로, 야구 이야기는 피하는 게 다년간의 경험에서 우러난 노하우입니다. 이런저런 가십 몇 개를 들이밀며 간신히 대화를 이어가고 있는데 김 감독이 대뜸 "혹시 저녁 먹었어?" 묻습니다. 안 먹었다고 하자 기다렸다는 듯 전화기를 들더니 "여기 두산 감독실인데요, 칡냉면 두 개만 갖다주세요" 하고 끊습니다. 그리고는 "여기 칡냉면 맛있어, 한번 먹어봐" 이럽니다

아무리 애써도 인상이 펴지지 않는 날. 선수와 코치들이 모두 보는 식당에서 밥 먹을 기분은 아니고, 그렇다고 혼자 먹기도 뭣했던 겁니다. 그날 제가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요. 매니저는 "저렇게 감독실에 혼자 앉아 계시다가 식사 거르고 게임 들어가는 날이 부지기수"라고 귀띔합니다.

김경문 감독은 2004년 부임 이후 2006년(5위) 한 차례만 빼고는 꼬박꼬박 포스트시즌에 진출했습니다. 5할 승률 밑으로 내려간 것은 단 한 시즌도 없습니다. 누가 봐도 성공한 감독이죠. 이런 사람이 밥 굶기가 예사였다면, 성적 못낸 감독들이야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프로야구 4강 팀이 가려졌습니다. 가을잔치 티켓을 쥔 감독이나 탈락한 감독이나 모두 애쓰셨습니다. 빈 속을 생수로 채우며 덕아웃 지키느라, 밤 11시에 혼자 식사하느라 정말 고생들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