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밤 서울 상수동 홍익대 앞 거리. 대한민국 최신 유행을 선도한다는 이 젊음의 거리에 네온사인 불빛을 받으며 '칙칙한' 무리들이 등장했다. 넥타이 부대였다.

회식장소에 가는 중이라는 이들은 넥타이부대가 평소 출입할 수 없는 홍대 클럽을 향하고 있었다. 본래 매달 마지막 주 금요일에 열리는 '클럽데이'에 넥타이를 매면 클럽에 입장을 할 수 없다. 복장에서 아저씨 냄새가 물씬 풍기면 클럽 입구에서 직원들로부터 제지를 당하기 일쑤다. "물 흐려서 안돼요!"

그러나 오늘 하루만큼은 예외다. 매월 셋째 주 목요일, 한 달에 한번 직장인을 위해 클럽을 개방하는 '목요사운드파크' 행사날이기 때문이다.

◆클럽에 입장한 넥타이 부대, 어색한 듯 팔짱부터 끼더니…

오후 8시. H백화점 직원 10여명이 우르르 클럽 '프리버드'(Free bird) 입구에 들어섰다. 매표소에 앉아있던 단발머리 남성이 넥타이 부대원들의 손목에 팔찌를 채웠다. 오후 8시부터 다음날 새벽 2시까지 8개의 사운드클럽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티켓 팔찌다.

홍대 클럽에 회식을 나온 H백화점 IT사업부 시스템정보팀 직원들.

막 공연을 시작해서인지 사람은 많지 않았다. 팔찌를 차면 나눠주는 음료쿠폰으로 맥주를 받아든 넥타이 부대원들이 뿌연 조명 아래 자리를 잡았다. 밴드 무대의 바로 앞자리다. 인디 밴드 '제이워크'(J-walk)가 한창 라이브를 하고 있었다.

밴드 앞에 둘러앉은 팀원들은 인디밴드의 생소한 노래와 클럽 분위기가 어색하다는 표정이었다. 일부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팔짱을 낀 채 밴드의 공연을 바라봤다. 오규모(43·H백화점 시스템정보팀) 팀장은 "아직 분위기가 적응이 되지 않아 그런지 (팀원들이) 조용하다"며 머리를 긁적였다.

어색함도 잠시. 맥주를 한 잔씩 들이킨 몇몇 팀원들이 리듬에 맞춰 발을 들썩이기 시작했다. 인디 밴드는 넥타이 부대의 귀에 맞게 흘러간 옛 유행가들을 부르고 있었다. 70~80년대 유행가를 들은 팀원들이 간간이 웃음도 터뜨렸다.

이번 '클럽 회식' 자리는 팀장 옆에 앉은 대리 김수현(34) 대리가 제안했다. 김 대리는 "인터넷검색을 하다가 우연찮게 '목요사운드파크' 행사에 대해 알게 됐다"며 "원래 우리 팀은 한 달에 한번 함께 영화를 보는데, 매번 영화만 보는 것보다는 클럽이 재미있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직장인 밴드, 데뷔 무대에 오르자 객석에서 "삼촌 화이팅!"

오후 8시 30분. 또 다른 클럽 ‘사운드홀릭시티’에서는 7인조 직장인 밴드 ‘프리락밴드’의 공연이 한창이었다. 2개월 전 인터넷 동호회를 통해 결성된 이들은 회사원, 공무원, 흉부외과 의사, 음악선생님 등 출신 배경이 다양했다. 그동안 서대문구 홍제동의 연습실에서 주말마다 모여 2시간씩 연습을 했다는데, 이 날이 데뷔 무대였다.

홍대 클럽 데뷔 무대에서 사력을 다해 공연중인 직장인 밴드 '프리락밴드' 멤버들.

프리락밴드는 영화 친구에서 4명의 주인공이 함께 뛸 때 신나게 흐르던 '배드 케이스 오브 러빙 유'(Bad Case Of Loving You)를 연주했다. 멤버들 이마에선 진땀이 흘러내렸다. 이를 본 예닐곱 살 꼬마가 "삼촌 화이팅"이라고 외쳤다.

30여명의 관객 속에서 대학생들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목요사운드파크' 소문을 듣고 찾아온 직장인들이 대부분. 프리락밴드 멤버들의 직장 동료, 친구, 가족도 많아 보였다. 이들의 적극적인 호응이 이어지자, 긴장했던 밴드의 움직임이 한결 자연스러워졌다. 보컬이 호기롭게 박수를 유도했다.

공연을 마친 기타리스트 김진현(35·흉부외과 의사)씨에게 소감을 물었다. "수술하는 것보다 훨씬 재미있었어요. 생각보다 반응이 좋은데, 기분이 아주 짜릿하네요." 김씨는 대학 때 동아리에서 기타를 쳤는데, 전문의 과정이 끝나고 여유가 생겨 직장인밴드에 지원했다고 한다.

◆유난히 많이 보이는 중년남성들, 이미 몇몇은 넥타이 벗어던져

오후 9시 30분. 인근 지하에 있는 클럽 '오뙤르'(AUTEUR)에서는 더 많은 넥타이 부대원들의 열기를 느낄 수 있었다. 무대 위에서는 인디밴드 서드스톤이 민요 '쾌지나칭칭나네'를 록 장르로 편곡해 부르고 있었다.

홍대의 클럽 '오뛰르'에서 인디밴드 공연을 즐기고 있는 회사원들.

인디밴드의 열정적인 헤드뱅잉이 이어지자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짙은 회색 정장을 차려입은 중년 남성이 유난히 굵은 목소리로 ‘앙코르’를 외쳤다. 객석을 메운 40여명의 손님들은 대부분 중년의 넥타이 부대였다.

서드스톤의 리더 박상도(29)씨가 마이크를 잡더니, “오늘 유난히 중년 남성분들이 많이 보이시네요. 이런 적 처음입니다. 이분들을 위해 특별히 우리 민요를 준비했는데, 이번엔 아리랑 한곡 더 갑니다!”라고 외쳤다.

밴드의 노래에 호응을 잘하면 CD를 나눠주겠다는 말에 한 대학생 커플이 연신 환호성을 질렀다. 이에 질세라 넥타이 부대도 조금씩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발로 박자를 맞추고, 손을 높여 박수를 치거나 어깨를 들썩이며 인디밴드의 음악에 동화됐다.

밴드음악을 좋아하는 상사를 따라 이곳에 왔다는 회사원 임훈택(33·이건산업)씨는 “큰 콘서트는 가봤어도 소규모 인디밴드의 공연은 처음 보는데, 생각보다 즐겁다”고 했다. 임씨의 상사는 이미 넥타이를 벗어던지고 열정적으로 환호성을 지르고 있었다.

오후 11시 30분. 밴드의 공연이 모두 끝났다. 땀에 흠뻑 젖어 클럽을 나서는 최주성(34·H백화점 시스템정보팀) 대리를 다시 만났다. 최씨는 “대학 졸업하고 6~7년 만에 왔는데, 많이 변해서 클럽 위치 찾는데 한참 걸렸어요. 그래도 그때 생각이 나네요”라며 웃었다.

넥타이 부대를 위한 홍대 ‘목요사운드파크’는 지난 4월 시작해 매월 셋째 주 목요일에 열리고 있다. 21개 클럽이 등록된 클럽문화협회의 장양숙 총무는 “젊은 층의 전유물로 여겨지는 클럽 문화의 벽을 낮추고 싶었다”며 “직장인들을 위한 행사인 만큼, 직장인들이 원하는 취향에 맞는 분위기를 만들어 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