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음이 심해서 진료 받으러 왔습니다."
여학생과 나란히 앉은 어머니가 '어떻게 오셨냐'는 내 물음에 학생 대신 답했다. 어머니 옆에 앉은 고등학교 2학년 진희(가명)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병력을 자세히 물어보았다. 진희는 고등학교 들어가면서부터 잠이 많아졌다. 어머니가 깨워도 쉽게 일어나지 못 했다. 수업시간에 수시로 졸았고 심지어 시험을 보다가 잠을 잔 일도 있어 어머니를 놀라게 했다. 고1때 학부모상담 하던 담임선생님은 진희가 수업시간에 조는 일 때문에 지적을 많이 받는다고 하면서 너무 밤늦게까지 공부 시키지 말라고 하기도 했다. 어머니가 볼 때, 진희는 자정 무렵이면 잠자리에 들고 오전 7시에 일어나므로, 6시간 자면서도 학교 잘 다닌 언니들에 비해 잠을 많이 자는 편이었다. 어머니는 선생님 말씀을 들을 때마다 진희에게 '네가 정신 차리고 의지를 강하게 가져야 한다'라고 해 왔다.
2학년이 된 후에도 진희의 졸음은 계속 되었다. 수업을 제대로 받지 못 하고 학습시간이 줄어들면서 성적도 떨어졌다. 담임선생님은 어머니와 상담을 하면서, 졸리는 것도 병일 수 있으니 수면클리닉에 가서 진료를 받아 보라고 했다. 선생님의 권유도 있고, 어머니 생각에도 진희의 졸음이 너무 심하다고 생각되어 병원을 찾은 것이다. 몇 가지 문진을 해 보니 기면증이 강하게 의심되었다. 진희는 기면증 진단을 위한 야간수면검사와 낮 검사를 1박2일에 걸쳐 받았다. 진희는 수면질환 중 하나인 기면증으로 진단되었다. 진희가 기면증이라는 수면질환 때문에 심하게 졸렸다는 것을 알게 된 어머니는 좀 더 빨리 병원에 데려오지 못 하고 고생시킨 것에 대해 안타까워했다. 또 그 동안 졸음으로 제대로 공부하지 못해 진희의 성적이 떨어진 것도 아쉬워했다.
기면증은 중고등학교 무렵에 시작되는 수면질환으로 심한 졸음이 특징이다. 청소년기에는 학업으로 피로가 많고 신체적 성장으로 인하여 수면요구량이 늘어나므로 수업시간에 조는 학생들도 많다. 그러나 다른 학생들에 비해 졸음이 심할 때는 기면증을 의심해 보아야 한다. 기면증으로 진단되면 약물로 치료하며, 정상인과 다름없이 생활할 수 있다. 졸음이 있을 때 기면증을 의심하지 않으면 진단할 수 없고 한창 공부할 시기를 졸음으로 보내게 된다. 아무리 좋은 선생님으로부터 수업을 듣더라도 그 시간에 졸음에 취해 있으면 아무 것도 머리에 남는 것이 없을 것이다. 필자에게 진료 받으러 오는 학생들 중에 선생님이 권해서 진료받으러 온다는 학생이 늘고 있다.
수업 중에 조는 학생들이 모두 기면증은 아니다. 졸음을 호소하는 학생들에서 가장 흔한 원인은 수면부족이다. 중고등학생들에서 신체적 성장과 정신활동을 유지하기 위해서 필요한 적정 수면시간은 9시간이다. '사당오락'이라는 말이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상상하기 힘들게 긴 수면시간이다. 학교수업, 학원수업 그리고 과외활동으로 늘 시간이 쫓기는 학생들이 가장 쉽게 줄이는 것이 수면시간이다. 그러나, 최근 연구에 따르면 잠을 자는 동안 낮에 학습한 것이 단기기억에서 장기기억으로 옮겨 가면서 낮 동안의 학습이 완성된다. 또 충분한 수면을 취하지 못 하면 뇌가 쉬지 못해서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이지도 못 한다. 적어도 7시간 이상의 수면시간을 유지해야 한다. 청소년은 성인보다 생체시계의 주기가 더 길다. 수면을 시작하게 만드는 멜라토닌 분비 시점이 성인보다 늦다. 그래서 늦게 잠들게 되며, 수면요구량도 많기 때문에 늦게 일어나기 쉽다.
아침마다 학생을 깨우기 위해 어머니들이 한바탕 전쟁을 치르기도 한다. 그렇게 깨워 등교를 시켜도 뇌가 완전히 깨지 않기 때문에 아침수업시간을 졸음 속에 보내기도 한다. 청소년에게 규칙적인 수면습관을 유지하도록 하고, 아침에 밝은 빛에 노출시켜 뇌를 각성시켜주는 것이 좋다. 학생들에게 좋은 내용을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수업을 잘 받을 수 있도록 뇌를 준비시켜주는 것도 필요하다. 좋은 부모와 선생님은 학생이 존다고 야단만 치지 않는다.
※코모키수면센터 신홍범 박사는 수면의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현재 서울의대겸임교수 겸 국제수면전문의로 활동중에 있다. 저서로는 '머리가 좋아지는 수면'이 있다.
입력 2010.09.16. 03:11
100자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