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는 설·추석 차례 및 삼대봉사(三代奉祀). 차례 때는 증조부모·조부모·부모의 순서로 지방을 새로 놓고, 간장·나물 등 기본 제수만 놔두고 모든 제물을 새로 진설함.
②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1985·1987년) 6남1녀 중 장남이 제사를 물려받음.
③ 1999년 형제들이 제물 준비를 나눠 맡기로 함. 명절 차례도 3대 여섯 분을 한꺼번에 모시고 진설도 한 번으로 줄임.
④ 2003년 '형제가 돌아가면서 제사를 모시자'고 합의하고 기제사는 장남, 차례는 나머지 형제가 순서대로 모심(윤회봉사).
⑤ 2006년 3대 여섯 분의 기제사를 부친 기일로 합해 '모둠제사'로 모시기로 함."
한국의 현대 가정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고민했을 제사의 문제를 압축해놓은 듯한 위의 사례는 정종수 국립고궁박물관장이 직접 겪은 집안 이야기이다. 정 관장은 16일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리는 '전통 상제례 문화의 현황과 과제' 학술회의에서 '한국 사회 전통제례의 현황과 과제' 발표문을 통해 자신의 경험을 예로 들며 제례의 변화상을 설명한다.
한국국학진흥원(원장 김병일)과 세계유교문화축전조직위원회(위원장 이윤철)가 이번 학술대회를 마련한 것은 추석 명절을 앞두고 전통의례 중 우리의 일상생활에 여전히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상례(喪禮)와 제례(祭禮)의 바람직한 미래상을 마련해보자는 취지에서다.
이 자리에서는 박종천 박사(충북대 우암연구소)가 '주자가례(朱子家禮)'에 기초한 전통 유교의례의 도입과 정착과정을 정리하고 김시덕 박사(대한민국역사박물관건립추진단), 이덕진 교수(창원전문대), 정종수 관장, 김미영 박사(한국국학진흥원)가 상례와 장례(장묘), 제례, 불천위(不遷位·나라에 큰 공훈이 있거나 도덕성과 학문이 높아 신주를 사당에 영구히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것을 나라에서 허락한 신위)제사를 주제로 각각 발표한다.
발표문들을 보아도 우리의 상·제례는 급격한 변화를 맞고 있다. 정종수 관장은 '모둠제사' '윤회봉사'와 함께 자녀 수의 감소에 따라 사위나 외손이 장인장모와 외조부모의 제사를 모시는 경우도 늘어날 것으로 전망한다. 김시덕 박사는 이젠 대부분 장례식장에서 장례를 치르면서도 ▲양복에 삼베두건을 쓰더라도 상복을 입는 것 ▲부고와 감사편지를 보내는 것 ▲밤샘 ▲분향과 절 ▲문상객 접대 등 전통상례의 흔적이 남아 있다고 지적한다.
상·제례의 현대화 논의는 결국 '정신'의 회복으로 요약된다. 금장태 서울대 명예교수(종교학)는 기조 강연문에서 "'가례'에 대한 주자의 기본입장도 '예법이란 때[時]가 중대한 것이니, 성현으로 하여금 예법을 쓰게 하면 반드시 옛 예법을 따르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도 옛 예법을 감쇄(減殺)하여 지금 시대의 예법을 따를 것이다'라고 해서, 옛 예법에 의존하는 범위를 줄이고 당대 사회의 예속(禮俗)을 적극적으로 수용할 것을 제안했다"라고 말한다. 시대 적합성, 현실성의 문제와 더불어 신성성, 경건성의 확보가 상·제례의 중요한 개혁방향이라는 것이다.
구체적 상·제례의 개선방향도 제시된다. 이덕진 교수는 장묘문화에 대해 ▲분묘 1기당 면적의 축소 ▲개인묘지의 집단묘지로의 변화 ▲분묘이력제 도입 ▲묘지형 자연장 지양 ▲장례 전문인력 양성과 지나치게 비싸진 수의(壽衣)문화의 개선을 제안한다.
학술회의 다음 날인 17일엔 경북 안동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이우당 권환(1580~1651) 종택에서 불천위 제사를 참관하는 기회를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