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초중반 대학 생활을 한 직장인들은 남성 2인조 밴드 '봄여름가을겨울'의 '10년전의 일기를 꺼내어'란 노래를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시작부터 클라이맥스 같은 분위기가 감돌았던 그 노래의 도입부 가사는 대충 이랬다. "내겐 더 많은 날이 있어 무슨 걱정 있을까/어제 힘들었던 순간들은 모두 지나간 것일뿐."
지난 주말 삼성 양준혁의 표정에서 바로 그 노래가 오버랩됐다. 양준혁은 라커룸 한구석에 앉아 노란색 겉표지에 담긴 파일을 뒤적이고 있었다.
"그거 뭡니까?" 기자가 질문했다. 양준혁은 "이게 바로 그거 아냐~. 뉴욕 메츠. 9년 전에 메츠가 나를 영입할 생각이 있었다고 내가 말했었고, 그때 당신이 기사도 썼잖어. 그때 미국에서 날아왔던 팩스잖아"라고 말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확실히 9년의 세월이 묻어난 듯 색이 바랜 팩스 용지였다. 군데군데 흐릿해진 부분도 있었다. 어쩌면 태평양을 건너게 만들었을 지도 모를 그때의 뉴욕 메츠 제안서를 9년간 깔끔하게 보관해온 것이다. 오는 19일 예정된 은퇴경기를 앞두고, 본인의 발자취를 되새기며 이런저런 추억을 되짚어가고 있었던 것일까.
"내 말이 거짓말 아니라는 거 이제 확인됐지? 금액도 거기 나와있지? 최대 70만달러라고." 양준혁은 웃으며 말했다.
'뭐, 거짓말이라고 생각한 적 없는데...'라고 속으로 중얼거리며 자세히 살펴봤다. 상단에 뉴욕 메츠를 상징하는 팀 로고가 찍혀있다. 그리고 그 밑에 2001년 12월19일 뉴욕 메츠 오마 미나야 부단장이 보낸 팩스임을 증명하는 활자화된 서명이 붙어 있다. 이어 "양준혁 선수에게 보내는 우리의 계약 제안서다. 가능한 빨리 답변 바란다"라고 적혀있다.
제안서를 보면, 우선 계약금 성격인 사이닝보너스가 10만달러다. 연봉은 20만달러였다. 규모를 봤을 때 보장된 연봉이었을 것이다. 그 외에 출전 타석수에 따라 보너스, 즉 인센티브가 점점 높아지는 조건이라는 게 눈에 띈다. 타석수를 최대한 채우면 40만달러를 받을 수 있게 돼있다. 결국 최대 총액 70만달러짜리 계약이었던 셈이다.
추가적인 내용도 있다. 신인왕을 타면 25만달러, 골드글러브를 수상하면 5만달러, 올스타에 선정되면 2만5000달러, MVP가 되면 25만달러를 추가 지급한다는 조건이다. 2003년에는 2002년에 받은 금액 총합을 연봉의 출발점으로 하며 2002년과 같은 인센티브를 적용받기로 돼있다. 2004년에도 역시 2003년 총수입을 기본 연봉으로 시작해 2003년과 유사한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2002시즌만 뛰고 구단에서 재계약을 원하지 않을 경우엔 일종의 전별금인 '바이아웃' 5만달러를 구단이 양준혁에게 주기로 돼있는 내용이다. 결국 양준혁은 그때 이 계약서에 사인했다면, 본인 성과에 따라 3년간 뉴욕에서 뛸 수 있었던 셈이다. 현재 뉴욕 메츠 단장을 맡고 있는 오마 미나야는 도미니카공화국 출신이며 무명 선수와 스카우트를 거쳐 메이저리그 최대 시장인 뉴욕 팀의 단장이 됐을만큼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또한 동양 선수에 대한 관심이 크기로 유명했다.
타석 인센티브까지 포함해 첫해 몸값이 최대 70만달러라면, 요즘 수준으로 봤을 때에는 낮은 금액이다. 하지만 2001년 당시만 해도 메이저리그는 한국 야구를 더블A 수준으로 평가하고 있었다. 그나마 '로또' 가능성이 있는 투수에겐 꽤 시선을 줬지만, 이승엽 정도를 제외하면 국내 타자에게는 거의 관심이 없었다. 그런 상황을 고려했을 때 양준혁이 받은 제안서는 객관적으로 '꽤 괜찮은' 조건이었다고 평가받을만 하다. 그 당시에도 양준혁은 홈런타자는 아니었다. 양준혁은 "메츠는 내가 땅볼을 치고도 1루까지 전력질주하는 모습, 그리고 선구안이 좋아 볼넷을 많이 얻는 점을 높게 평가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