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권력서열 1위인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과 서열 3위인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중국 남부 선전에서 잇따라 행한 연설을 놓고 각기 다른 해석들이 나오고 있다. 홍콩과 중국 언론들의 보도 방향이나 전문가들의 해설도 제각각이다.
선전의 경제특구 지정은 1980년 8월 26일에 이뤄졌다. 원 총리는 8월 20일 먼저 선전을 찾았다. 그는 선전시가 30년간 이룩한 성과를 칭찬한 뒤 "정치체제가 개혁되지 않으면 경제체제 개혁이 이룬 성과를 잃을 수도 있다. 특히 정치개혁이 정체되거나 후퇴된다면 개혁·개방의 성과를 묻어버리고 인민의 의지에 위반될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죽음의 길에 이르게 된다"고 말했다. 정치 개혁의 필요성과 시급성, 중요성이 절절히 묻어난다.
하지만 국내외 사정으로 '선전 경제특구 성립 30주년 경축대회'는 10여일이 지난 9월 6일에야 열렸다. 이 자리에서 후 주석은 "경제·정치·문화·사회 체제 개혁은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정치발전 노선을 견지하면서 이뤄내야 한다"고 언급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7일자 1면 톱 기사에서 "두 지도자의 선전 연설은 정치개혁 문제에 대한 '극명한 분열(sharp division)'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원자바오는 '정치개혁'의 시급함을 누누이 강조했지만 후진타오는 '정치개혁'이란 단어를 딱 한번 지나가는 말로 '경제·정치·문화·사회 체제 개혁'이라며 뭉뚱그려 사용하면서도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노선'에 맞춰야 한다고 명확한 한계를 그었다는 것이다.
홍콩 빈과일보도 "후진타오 주석은 경축사에서 '사회주의 노선'을 여러 차례 강조하면서 정치개혁이라는 굴레를 풀지 않아 원자바오 총리와 거대한 차이를 보였다"고 평가했다. 후 주석이 "법에 따라 민주선거와 민주적 정책결정 민주관리 민주감독을 실행하고 인민의 알 권리와 참여권, 표달권(청원권), 감독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이는 결국 "공산당의 영도하에 이뤄져야 한다"는 것으로 종전의 연설들과 내용이 달라지지 않았다고 평가절하했다.
그러나 중국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人民日報)와 홍콩의 문회보(文匯報) 등은 "후 주석이 정치개혁을 바라는 인민들의 새로운 기대에 부응하는 연설을 했다"고 높이 평가했다. 정치체제 개혁 추진을 명확히 하고 인민이 주인 되는 길을 보장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홍콩대 정치학과 리처드 후(Hu) 교수는 본지에 "두 지도자의 연설은 표현의 차이가 있을 뿐 근본적인 차이는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후 주석이 보다 공식적이고 조심스럽게 말하고 원 총리가 자연스럽고 장황하게 말했지만, 정치 개혁의 필요성에 대한 두 사람의 인식이 다를 수 없다고 설명했다.
반면 홍콩 침례대 정치학과 딩웨이(丁偉) 교수는 "원 총리는 전국을 돌며 발전의 한계와 개혁의 필요성을 절실히 경험하기 때문에 다른 무엇보다 우선해 정치개혁을 강조한 것이고, 이 문제에 절실하지 않은 후 주석은 개혁보다는 안정에 중점을 둔 연설을 한 것"이라고 차이를 설명했다.
특히 신화통신 인터넷 뉴스는 후진타오 주석의 '선전 연설'을 전후해 광저우(廣州)에서 발행되는 남방도시보의 "정치체제 개혁은 미래 특구의 새로운 사명이 돼야 한다"는 기사를 주요 기사로 올렸다. 이에 대해 딩웨이 교수는 "중앙 선전부와 신화통신 간부 중에도 정치개혁의 시급성을 인식한 사람이 많고 이들이 비록 지방지라도 뜻이 훌륭하다고 판단해 기사를 올린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베이징의 한 외교 소식통은 "정치개혁의 범위와 속도에 대해 두 사람이 다소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 시각 차가 크거나 대립하는 것은 아니다"면서 "다만 홍콩 언론들이 거대한 차이가 있는 것처럼 보도하는 것은 제3의 세력들이 후 주석을 공격하려는 의도를 드러낸 것 같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다른 소식통은 "홍콩의 서로 다른 보도는 베이징 권력 내부에 뭔가 알력이 있음을 방증한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