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의 모 초등학교에 다니던 6학년 구모(12)군은 지난 3월 1일 혼자 남아프리카공화국(남아공)에 왔다. 영어를 배우려고 조기 유학을 온 것이다. 구군은 이번 기회에 중국어도 함께 익히기 위해 프리토리아시(市)에 있는 중국인 학교에 입학했다. 구군은 "우리 반에는 한국인 친구가 3명 있고, 학교 전체에는 20명이 넘게 있다"고 했다. 이 학교 전교생 500여명 중 출신 국가별로 남아공 65%, 중국 16%이며, 한국은 약 4%에 이른다.
남아공을 찾는 '10대 기러기 유학생들'과 '기러기 엄마들'이 늘고 있다. 주한 남아공 대사관의 연간 학생 비자(study permit) 발급 건수는 2001년 226건에서 지난해 461건으로 2배 이상 증가했다. 주남아공 대사관에 따르면, 2010년 5월 현재 남아공 교민 수는 4000여명으로, 이 중 25%인 1000여명이 조기 유학생과 그 가족으로 추산되고 있다.
학부모들이 자녀들의 조기 유학지로 남아공을 선택하는 첫 번째 이유는 다른 영어권 국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 때문이다. 주부 이정신(47)씨는 2년 7개월 전 아들(12)과 딸(14)을 데리고 남아공을 찾았다. 이씨는 "처음에는 미국으로 갈까 망설였는데 당시 1인당 한 달 생활비만 200만~250만원 들 것으로 예상됐다"며 "이곳에서는 그 돈으로 세 식구가 한 달을 지낼 수 있다"고 했다. 공립학교에 다니는 이씨 두 자녀의 한 달 학비는 약 30만원이다. 이씨는 "한국보다 조금 비싸지만, 이곳에서는 수십~수백만원대의 사교육비가 들지 않는다"면서 "오케스트라 교육 같은 다양한 방과후 활동을 마련해 주는 것도 남아공 학교의 장점"이라고 했다.
요하네스버그시에 사는 '기러기 엄마' 장미정(39)씨는 "불안한 남아공의 치안 상황이 아이들 교육에는 오히려 도움이 된다"고 했다. 장씨는 "집 밖으로 외출을 하려면 아무리 가까운 거리라도 안전을 위해 승용차를 타야 하는데 미성년자는 부모에게 '태워 달라'고 부탁할 수밖에 없다"면서 "아이들이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있어 안심이 된다"고 했다.
남아공에서 무역업을 하는 임창순(43)씨는 오전 6시 30분 열세 살과 열 살짜리 두 딸을 차에 태워 세인트 메리(St. Mary) 학교에 등교시키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오후 2~3시쯤에는 하교하는 두 딸을 태우러 다시 학교에 가야 한다. 임씨뿐만 아니라 이 학교 모든 학부모들의 '의무'이다. 교칙상 부모나 부모가 정한 대리인이 아니면 방과후 아이들을 학교 밖으로 데리고 나갈 수 없다. 임씨는 "항상 아이들을 태우러 다녀야 하기 때문에 귀찮을 때도 있지만 미국이나 호주, 중국처럼 유학생들끼리 PC방·노래방으로 몰려다니는 것보다 낫다"고 했다.
학부모들은 "열악한 인터넷 환경도 장점"이라고 했다. 송모(16)군은 "남아공 인터넷이 워낙 느리고 비싸서 게임에 흥미를 잃게 됐다"면서 "다시 공부를 하니까 성적도 오르고, 학교에서 연극 활동을 하면서 대인기피증도 사라졌다"고 했다.
아프리카 다른 국가에서 일하는 지·상사 주재원이나 사업가들도 상대적으로 교육 환경이 좋은 남아공에 자녀들을 보낸다.
일부 기러기 엄마들은 "남아공의 장점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고 했다. 케이프타운에서 아들(20)·딸(10) 뒷바라지를 하는 주부 이중옥(47)씨는 "2005년 처음 왔을 때는 식빵 한 봉지 가격이 4랜드(640원)였는데, 이제는 두 배로 올랐다"며 "전기료·수도세도 매년 10% 이상 오르고 있다"고 했다. 교민 장순희(45)씨는 "오후 2~3시면 수업이 끝나는 남아공 중·고등학교를 다니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서 적응을 못 하는 학생을 자주 봤다"고 했다.
프리토리아 대학 경제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인 김모(22)씨는 초교 6학년 때 가족과 함께 남아공에 왔다가 5년 뒤 한국으로 돌아갔다. 김씨는 귀국 1년 만에 혼자 남아공으로 다시 왔다. 김씨는 "대학교 특례 입학 자격이 있었지만 한국의 학교생활을 버틸 자신이 없었다"면서 "남아공에서 공부하고 생활하는 게 훨씬 마음이 편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