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지게를 짊어졌다. 가난 때문에 공부를 제대로 못했고, 열등감에 시달려 우울한 청춘을 보냈다. 그러나 쉽게 꿈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7전 8기로 한의대에 합격했다. 비염 치료제를 개발해 돈방석에 앉자 평생의 소원이라며 엉뚱한 고집을 부렸다. 10년 넘게 식물원을 만들었고, 번 돈을 고스란히 쏟아부었다. 쓸데없는 일이라며 말렸던 아내는 지금은 식물원 운영을 도맡고 있다. 포천 평강식물원 이환용(51) 원장과 부인 원영옥(46) 부원장의 얘기다.
◆한의원에서 식물원으로
"손으로 만지고 한번 냄새를 맡아보세요. 울릉도에 자생하는 섬백리향인데 향기가 100리나 간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답니다." 전국에 폭염 주의보가 내려졌던 지난 22일 포천시 영북면 산정리 평강식물원. 원영옥 부원장은 땡볕을 마다 않고 관람객들의 발길을 붙잡고 손수 안내에 나섰다. 이환용 원장은 "하나라도 더 설명하지 못하면 안달이 나는 사람"이라며 웃음을 지었다.
2006년 개원한 평강식물원(www.peacelandkorea.com)은 7000여종의 식물을 보유한 국내 굴지의 사립 식물원이다. 59만㎡(약 18만평) 부지에 자생식물원, 고층습지, 고산습원, 암석원, 이끼원, 습지원 등 테마 정원 12개를 갖췄다. 그러나 예쁘게 꾸며 사진 촬영에 더 어울리는 여느 식물원과는 다르다. 고향 마을처럼 편안한 식물원을 만들겠다는 이 원장의 집념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이 원장은 '평강한의원 원장'으로 더 유명하다. 서울 강남역 근처 직원 5명에 불과한 작은 한의원이다. 그러나 밀려드는 환자들이 문전성시를 이룬다. 그가 개발한 '청비환'은 알레르기성 비염, 축농증 치료제로 엄청난 명성을 누리고 있다. 그러나 그는 아직 내 집도 없이 월세에 살고, 골프도 치지 않는다. 한의원과 식물원 운영에 몰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식물원은 고향을 떠나온 뒤 늘 마음속에 간직해 온 꿈이었습니다. 고향 마을의 동산이 개발로 사라지는 것을 보면서 언젠가는 반드시 돈을 많이 벌어 다시 살려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의 고향은 충청남도 서산이다. 세살 때 아버지가 별세하고 지독한 가난에 시달렸다. 고등학교 2학년때 교통사고로 6개월 병원 신세를 졌고, 공부는 포기했다. 치료를 겸해 지압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 침술을 배워 써먹었고, 한의사가 되겠다는 꿈도 갖게 됐다. 그러나 내신도 꼴찌에다 언감생심이었다. 노량진 독서실에서 기거하며 '학생의사'로 침을 놓아주며 고학을 했다.
군대도 다녀오고 8수 만에 동국대 한의대에 합격했다. 졸업 후 한의원을 열었지만 빚만 쌓였다. 그때 큰 행운을 만났다. 재수 시절 알고 지낸 할머니가 콧병에 잘듣는 '코나무'를 가져와 구해달라고 부탁했다. 참느릅나무 뿌리 껍질을 찾아줬더니 축농증이 씻은 듯이 나았다고 했다. 그래서 각종 약재를 섞어 지어보며 연구한 끝에 7년 만에 청비환을 개발했고, 대박을 터뜨렸다.
◆식물원 가치 인정받아
떼돈을 벌게 되자 이 원장은 1997년부터 식물원 조성에 나섰다. 그러나 역시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 부인 원씨는 "당신은 한의원을 봐야 하는데 누가 식물원을 관리하느냐. 차라리 한의원 건물의 사무실을 조금씩 사들이고 월세를 받아 세계 각국의 식물원을 찾아다니는 게 낫지 않겠느냐"며 말렸다. 주변에서도 "왜 편하게 살지 않고 일을 벌이느냐"고 거들었다.
그러나 이 원장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포천 산골짜기를 사들여 종자 채집, 온실 제작, 정원 조성 등을 차근차근 진행했다. 이때부터는 한의원에 매달려야 하는 이씨 대신 원씨가 큰 역할을 했다. 원씨는 "10년 넘게 식물원을 오가면서 운전실력만 늘었다"고 했다. 매일 작업을 챙기고 풀을 뽑았다. 외국 식물원을 찾아 견문도 넓혔다. 이끼원도 뉴질랜드를 돌아본 뒤에 만들었다. 한때 초등학교 교사를 했던 원씨는 2006년에는 고려대에서 환경생태공학 석사 학위를 받을 정도로 식물에 빠져들었다. 이 원장은 "아내가 도와주지 않았으면 이루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씨 부부의 투자와 노력으로 평강식물원은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식물 자원의 보전·증식이라는 본연의 기능에 무게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고산식물 1000여종이 자라는 암석원은 아시아 최고라고 자부한다. 백두산, 한라산, 설악산은 물론 히말라야, 알프스에서 자생하는 식물도 자라고 있다. 멸종위기식물을 보전하고 증식하는 기관으로도 지정받았다. 개원 직후에는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다녀가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아직도 적자라고 한다. 직원만도 식물학을 전공한 인력 10여명에 아르바이트까지 합치면 50명이나 된다. 한해에 10만명 정도가 방문하지만 입장료 수입이 많지 않다. 또 식물 자원의 수집이나 보전에 적지 않은 비용이 든다. 때문에 이 원장이 한의원에서 밤낮 없이 일하며 모은 돈이 남아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원장은 "나는 어쩌면 식물의 도움을 받아 성공하고 재산을 모았는데, 식물을 사랑하고 보전하기 위해 쓰면서 은혜를 갚는 셈 아니냐"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