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억 이슬람권의 성월(聖月)이자 금식월인 라마단이 지난 11일 시작됐다.
라마단 기간에 무슬림(이슬람 신자)들은 한달간, 일출부터 일몰까지 물을 포함한 일체의 음식을 입에 대지 않는다. 약 14만명인 한국의 무슬림들도 마찬가지다.
11일 낮 서울 이태원 한국 이슬람교중앙회 인근의 한 이슬람 음식점. 점심시간인데 손님이 거의 없었다. 라마단 영향을 받아서다. 이에 비해 인근 무슬림 정육점엔 고기를 사러온 이들이 줄을 이었다. 주인은 "밤에 고기를 요리해 먹기 위해 낮에 미리 사가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라마단 기간에 무슬림들은 오전·오후 금식하는 대신 저녁이 되면 한자리에 모여 풍성한 만찬을 즐긴다. 무슬림 레스토랑들은 라마단 기간에 저녁 특선 '할랄(Halal)식품'들을 내놓으며 손짓한다. '할랄'은 원래 '율법에 따른' '허용된'이란 뜻.
할랄 음식은 음식 원료와 조리 과정 등에서 돼지고기나 알코올 성분이 일절 없어야 한다. 소·닭 등 허용된 고기도 '신의 이름으로'라는 주문을 외운 뒤 단칼에 정맥을 끊어 도살한 것만 할랄식품으로 인정된다. 과자나 주스 등 가공식품도 돼지나 알코올 성분이 없어야 한다.
전 세계 식품메이커들에 있어 15억명에 이르는 전 세계 무슬림 시장은 새로운 블루오션이다. 종교적 이유가 아니라 '깨끗하고 안전해 보인다'는 이유로 미국 등지에서도 비신자들의 소비가 늘고 있다. 이태원 할랄 식품점에도 한국인의 발길이 잦아졌다. 전 세계 할랄 식품 시장 규모도 6300억달러(약 740조원)로 성장했다.
이 시장에 진출하려면 할랄 인증을 받아야 한다. 한국에선 업체가 성분분석표나 품목제조보고서를 내고 제조공정도와 샘플 등을 제출하면 이슬람교 중앙회에서 현장에 나가 확인한 뒤 인증 여부를 결정한다. 인증 기한은 1년.
빵 하나만 놓고 봐도 할랄 인증을 받으려면 신경 써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유화제와 가루반죽 조정제는 반드시 식물성 기름으로 만든 것이어야 하고, 빵을 구울 때도 에틸 알코올을 쓰면 안 된다. 쇼트닝도 식물성을 써야 하고 바닐라 추출물도 금지된다. 바닐라 추출물에 알코올 성분이 들어 있어서다. 맥주 부산물인 양조효모 추출물로 만든 과자도 할랄 인증을 받을 수 없다. 마요네즈·케첩·드레싱에도 할랄로 인증받은 유화제와 착색료를 써야 한다. 복합원료로 구성되는 완제품 형태 식품일수록 할랄 인증을 받을 확률은 점점 낮아진다. 제과 업계에서 할랄 인증은 '하늘의 별 따기'로 통한다. 제과업체들은 돼지에서 추출한 젤라틴 대신 소에서 빼낸 젤라틴을 쓰는 등 묘안을 짜내고 있지만, 한국 이슬람교 중앙회는 "콘프레이크류를 제외하곤 한국에서 할랄 인증을 받은 과자류는 아직 없다"고 말했다. 할랄 인증을 받은 100여개 식품 중 대부분은 식품 원료이다. 완제품 형태는 라면·김치·녹차·김·홍차·탈지분유·유자차 등 손에 꼽을 정도다.
할랄 열풍은 음식에서 그치지 않고 화장품과 의류로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KOTRA(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는 이슬람 여성들을 겨냥한 할랄 화장품 시장에 뛰어들 것을 독려하고 있다. KOTRA는 "중동의 미용제품·화장품 시장이 해마다 12%씩 성장하고 있어 시장규모가 21억달러에 달한다"며 "할랄화장품이 할랄산업의 새로운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한국의 할랄 비즈니스는 이제 막 걸음마를 뗀 것에 비유된다. 브라질은 할랄 도축 시설을 완비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소비하는 닭의 대부분을 공급하고 있고, 호주는 세계에서 할랄 양을 가장 많이 수출하는 나라로 떠올랐다. 네덜란드는 할랄 상품을 보관하는 공간 주변에는 아예 돼지고기와 알코올 성분을 찾아볼 수 없게 한 '할랄 창고'도 만들었다. 유통과 보관 등 전 과정에서 정결함을 유지한다는 점을 강조해 할랄 상품의 허브로 자리 잡기 위한 노력이다.
무슬림들을 위해 남녀 공간을 구분한 수영장과 스파를 설계해주는 회사도 생겨나고 동물 뼈 원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은 할랄 뇌막염 백신도 나왔다. LG는 이슬람 성지인 메카의 방향을 가리키는 휴대폰 앱을, 노키아는 무료로 내려받을 수 있는 코란 암송 앱을 내놓았다. 전 세계 할랄 산업은 글로벌 경제위기 가운데도 성장을 거듭했다. KOTRA가 추산하는 전 세계 할랄산업 시장규모는 2조달러에 이른다.
젊은 무슬림들이 늘고 있다는 점을 들어 이런 추세가 계속될 것이란 전망도 많다. 하지만 바로 이 점이 할랄시장 성장의 한계 요인이라고 보는 이들도 있다. 정치·종교적 고려보다는 개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젊은 세대들이 "할랄에 얽매이는 데 질렸다"며 소비패턴을 바꾸고 있다는 주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