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 청담동과 신사동 가로수길 레스토랑 곳곳에 낯선 메뉴가 상륙했다. 이름하여 '드라이에이징(dry aging·건조숙성) 스테이크'. 비싼 편이다. 일반 스테이크의 1.5배가 넘는다. 그런데도 트렌드에 민감한 미식가들을 사로잡으면서 전문 레스토랑이 잇따라 문을 열었다. 최근 가장 '뜨는' 곳으로 꼽히는 청담동 '더 반'은 평일 점심에도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인기다. 드라이에이징이 뭐기에 올해 미식계 최대 트렌드로 떠올랐을까.
드라이에이징, 즉 건조숙성 방식은 고기를 공기 중에 그대로 두고 숙성한다. 일반 스테이크는 고기를 진공 포장해서 냉장고에서 일정기간 두는 습식숙성(wet aging)이다.
고기를 사서 집 부엌에 그냥 두면 저절로 건조숙성이 될까. 그렇지 않기 때문에 가격이 비싸다. 건조숙성을 시키려면 습도, 온도는 물론 공기 흐름, 즉 바람의 방향까지 세심하게 관리해야 한다. 온도가 올라가면 맛을 좋게 하는 효소 작용은 활발해지지만, 미생물이 침투할 가능성이 크다. 습도가 너무 높으면 세균이 번식하고, 지나치게 낮으면 과도하게 수축할 수 있다.
숙성기간·습도·온도는 요리사마다 경험에 따라 조절한다. 대개 온도는 0~4도, 습도는 80% 내외가 일반적이다. 이 상태로 고기를 두면 수분이 증발하면서 고기가 수축하고 표면부터 서서히 부패한다. 최종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고기의 양은 30~60%로 줄어든다. 이 줄어든 부분에 영양분이 농축되면서 맛이 진해진다. 양이 준데다 부패한 부분을 잘라내면 조리할 수 있는 양이 얼마 되지 않는다. 당연히 가격은 손실분을 반영해 올라간다.
알고 보면 건조숙성은 새로운 방식이 아니다. 일반 숙성이 나오기 전에 사용하던 예전 방식이 되살아난 것이다. 1960년대 진공포장법이 개발되기 전에는 건조숙성만이 유일한 숙성 방법이었다.
실제로 숙성하는 곳은 어떻게 생겼을까. 신라호텔이 올해 마련한 숙성고를 본지에 처음으로 공개했다. 10㎡(3평)에 대형 선반 3개가 서 있다. 안쪽 선반에는 한우 등심, 오른편에는 미국산 등심이 일곱 덩어리씩 놓여 있다. 온도는 약 3도, 습도는 70% 내외, 바람 세기는 '50'으로 조정해뒀다. 한우는 8주, 미국산은 이보다 약간 짧게 숙성한다. '라 콘티넨탈' 임형택 셰프는 "육포가 되는 과정과 비슷하다"면서 "곶감과 생감 맛이 다른 것처럼 건조숙성은 독특한 풍미가 있다"고 말했다.
미식가들은 "건조숙성이 반드시 더 맛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씹자마자 입안 가득 단숨에 퍼지는 육즙을 좋아한다면 일반 스테이크가 입맛에 맞다. 건조숙성은 처음 먹었을 때 퍽퍽하다고 느끼기 쉽다. 하지만 씹을수록 고기맛이 진해진다. '구(口) STK 528'의 정성구 셰프는 "한번 맛 들이면 일반 숙성은 싱거워서 못 먹게 된다"고 말했다.
건조숙성에는 미국산 프라임급 고기가 많이 쓰인다. 한우는 맞지 않는다는 의견도 있다. 살코기에 수분 함유량이 원래 적고, 건조되면서 지방의 신맛이 강해진다는 분석이다. 설혹 가능하더라도 원래 비싼 한우가 더 비싸지면서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게 된다.
건조숙성을 즐기려면 레어나 미디엄 레어가 적당하다. 수분이 없는 건조 숙성육을 그 이상으로 구우면 퍽퍽해서 맛을 즐기기 어렵다. 뼈가 붙어 있는 부위가 더 맛있다. 뼈에서 감칠맛을 내는 이노신산이 스며 나와 고기로 퍼지기 때문이다.
추가 가격을 지불하고라도 진한 고기맛과 독특한 풍미를 즐기고 싶은 이들에게는 건조숙성 스테이크가 권할 만하다. '더스테이크하우스'의 조병일 셰프는 "일반 스테이크를 선호하는 고객층이 두텁기 때문에 드라이에이징은 일시적인 유행에 그칠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