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오후 정화조 청소부 김이현(가명·60)씨가 호스를 짊어매고 서울 강북구의 한 언덕을 오르고 있다.

잔뜩 찌푸린 구름 사이로 한여름 태양이 작열했다. 수은주는 벌써 31도를 가리켰다. 22일 오후 2시 서울 강북구 삼양동의 한 주택가 골목길에선 60대 남성 두 명이 높다란 언덕을 향해 올랐다.

“정화조 청소 부탁하신 분! 정화조 청소 부탁하신 분!”

정화조 청소부 김이현(가명·60)씨가 땀을 닦으며 목청껏 소리를 질렀다. 쇠꼬챙이 2개와 긴 쇠막대기를 들고 묵직한 고무호스를 끄느라 이미 김씨의 몸은 땀범벅이었다. 호스 옮기는 것을 돕던 운전사 최승섭(가명·62)씨도 굵은 땀방울을 흘렸다.

“여기요~” 한 다세대주택에서 대답이 흘러나왔다. 50대 여성을 따라서 주택으로 들어선 김씨는, 곧장 화분 밑에 숨겨진 정화조 뚜껑부터 찾았다. 쇠꼬챙이 2개로 뚜껑을 열자 정화조에 숨어 있던 각다귀(깔따구) 떼들이 한꺼번에 쏟아져나왔다.

“어휴~ 냄새가 독하네..”

정화조에 쌓인 시커먼 분뇨(糞尿)가 역한 냄새를 풍겼다. 김씨는 “원래 정화조에 쌓인 분뇨는 푹 삭아서 냄새가 거의 나지 않는데, 이 집은 정화조 설치가 잘못됐는지 냄새가 심하다”고 말했다.

김씨가 능숙한 솜씨로 쇠막대기를 이용해 분뇨 덩어리를 잘게 부수면서 호스로 분뇨를 빨아들였다. 딱딱하게 굳은 똥오줌을 잘게 부수지 않으면, 고무호스가 이내 막혀버린다. 분뇨를 다 제거한 뒤 정화조와 호스를 물로 닦으면 비로소 작업 종료.

보통 한 집당 20분 정도면 작업이 끝나지만, 이 집은 40분이나 소요됐다. 게다가 이번 집은 정화조 트럭이 들어갈 수 없을 만큼 좁은 골목에 있어서 25m짜리 호스를 세 개나 연결해야 했다. 환갑이 지난 두 정화조 청소원은 무거운 호스를 분리해 어깨에 걸친 뒤 몸을 휘청거리며 왔던 길을 따라내려 갔다. 연방 굵은 땀방울이 국숫발처럼 흘러나왔다.

목적지에 도착한 청소부들이 좁은 골목길에 차를 세우고 호스를 집안에 들이고 있다.

◆달동네 갈 때는 호스 옮기는 게 일

정화조 청소는 트럭 운전사 1명과 미화원 1명이 한 조를 이뤄 진행된다. 미화원이 실질적으로 정화조 청소를 담당하지만, 운전사도 무거운 고무호스를 옮기는 등 협력적으로 정화조 청소를 해나간다.

현재 정화조 청소 업무는 현재 구청마다 2~3군데 정화조 업체에 위탁하는 형식으로 운영된다. 주민들이 구청에 정화조 청소를 신청하면, 각 구청이 업체에 업무를 할당한다. 한국환경청화협회는 서울에만 1000여명의 청소부가 활동 중인 것으로 추산했다.

미화원들이 쓰는 전용트럭은 5t부터 20t까지 크기가 다양하다. 강남 지역은 고층 빌딩과 아파트가 많아지면서 용량이 큰 20t 차들이 쓰이지만, 개인 주택과 달동네가 많은 강북 지역은 가장 작은 5t 차량이 주로 이용되고 있다.

미화원 최승섭씨는 “아직도 강북구 삼양동, 송천동 일부 지역은 고무호스를 최대한 늘어뜨려도 닿지 않는 집이 많다”며 “이런 집은 호스를 옮기고 정화조를 청소하는 데 한 시간 넘게 걸린다”고 설명했다.

이날 작업은 오전 6시에 시작됐는데, 2시간쯤 지나자 벌써 5t 트럭의 탱크가 가득 찼다. 대개 4~5가구의 정화조를 비우면 만차가 된다. 최씨는 분뇨를 비우기 위해 30분을 달려 성동구 송정동의 ‘중랑물재생센터’에 도착했다. 중랑물재생센터는 송파구, 성북구, 노원구 등 서울 11개구에서 몰려온 정화조 트럭으로 가득 차 있었다. 서울에는 중랑물재생센터와 같은 하수처리장 4곳이 시 내외곽에 흩어져 있다.

직접 쇠막대기로 정화조 속 분뇨 덩어리를 부수고 있는 고정현 인턴기자

◆“일반 식당은 근처도 못 가”

정화조 탱크를 깨끗이 비우고 재생센터를 출발한 트럭은 오전 9시쯤 중랑천 근처 둑에 멈춰 섰다. 김이현씨는 “아침밥을 먹자”며 근처 허름한 식당으로 들어갔다.

식당 안에는 정화조 청소원과 근처에서 일하는 일용직 노동자들이 아침밥을 먹고 있었다. 최승섭씨는 “일반 식당에 들어가면 괜히 냄새난다고 손님이며 식당주인이며 몰아세워 밥을 먹을 수 없다”며 “이 식당이 정화조 청소원들이 모여 아침, 점심을 먹는 곳”이라고 설명해줬다.

식당 주인이 내온 아침은 시래깃국에 김치·멸치조림 등 간단한 반찬 5~6개가 전부였다. 다소 부실해보였지만, 김이현씨는 밥 두 공기를 10분도 안 돼 뚝딱 삼키듯 해치웠다. 최씨는 서둘러 식당을 나서면서 “정화조 트럭이 5~20t인데다가 냄새난다는 이유로 주차할만한 곳이 (사실상) 없다”며 “그나마 이곳도 30분 이상 차를 세워두면 구청에서 주차위반 딱지가 날라 온다”며 바로 위 감시카메라를 쳐다봤다.

두 사람은 오전 중에 다시 강북구 송천동에서 네 가구의 정화조를 청소했다. 점심 장소는 아침때와 같았다. 그나마 점심때는 갈치구이 세 덩이가 나와 두 사람의 입이 흐뭇해졌다.

계단으로 이어진 달동네에서, 정화조 청소부들이 차를 세워놓고 고무호스를 옮기고 있다.

◆푹푹 찌는 날씨에 긴 팔 긴 바지 복장.. 그래도 여름이 낫다

오후가 되자 날씨는 푹푹 찌기 시작했다. 서울시가 지급한 녹색 긴 팔·긴 바지 정복을 입은 두 사람은 연방 팥죽땀을 흘렸다. 걷어붙인 소매에는 땀방울이 흡수되지 못한 채 그대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최승섭씨는 “여름이 그나마 낫다”며 “겨울은 손발이 시린 데다가 얼어붙은 분뇨가 고무호스를 막거나, 지나가는 자동차가 호스를 밟아 깨뜨리는 일도 종종 생긴다”고 했다.

정화조를 청소하던 최씨가 갈증을 이기지 못하고 집주인에게 냉수를 청했다. 30대쯤 돼 보이는 여성이 얼른 시원한 냉수를 내왔다. 최씨는 “물이라도 떠다 주는 분은 아주 고맙다”면서 “일부는 우리를 불러놓고는 문을 꼭 닫고는, 창문으로 ‘자기 집 물건 하나라도 건드릴까’ 감시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분뇨를 처리하는 일이지만, 사실 이들의 몸에서는 별다른 악취가 나지 않았다. 트럭과 정화조에서도 역한 냄새가 나는 경우는 드물었다. 오히려 각 집에서 내놓은 음식물 쓰레기 냄새가 더 심했다. 그럼에도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차갑다.

김이현 씨는 “정화조 일을 하면 양동이가 꼭 필요한데, 가끔 내가 만진 양동이를 보고 (더럽다고 생각했는지) '그거 버리는 거니까 가져가라'는 사람도 있다”면서 “그럴 때는 화도 못내고 정말 환장한다”고 했다. 최승섭씨도 “정화조는 분뇨를 삭혀 냄새가 크게 안 난다”며 “사람들이 괜히 ‘똥차’ 하면 냄새가 난다고 생각해 코를 쥔다”고 했다.

‘냄새 난다’는 이미지 탓인지, 젊은 사람이 일을 지원하는 경우도 적다. 하루 12시간 내내 호스를 끌고 다니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최승섭씨는 “젊은 사람들은 정화조 청소가 업무 강도에 비해 월급이 박해서 오래 버티지 못한다”며 “나중에 이 일은 누가 할는지..”라며 말끝을 흐렸다. 정화조 청소부들의 월급은 160~200만원 정도라고 한다.

오후 5시 30분쯤, 18번째 집을 끝으로 이날의 정화조 청소가 모두 끝났다. 최승섭 씨는 “오늘 기자가 와서 (회사에서) 업무량을 좀 줄여 줬다”며 “원래 하루에 20가구 넘게 청소한다”고 말했다. 평소 오후 5시면 마무리되는 작업이 ‘신참’ 때문에 조금 늦어진 듯했다. 두 사람은 어깨를 매만지며 “빨리 집에 가서 쉬어야지. 빨리 쉬어야지”라는 말을 반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