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만 폴란스키 감독

아동 성폭행 혐의로 체포된 로만 폴란스키(76) 감독을 스위스가 석방했지만 인터폴의 수배령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인터폴이 13일(현지시각) 밝혔다.

인터폴은 “폴란스키 감독에 대한 적색수배가 해제되려면 이를 요청한 미국이 철회를 요구해야 한다”며 “아직 미국으로부터 수배 해제 요청은 없었다”고 말했다. 적색수배는 각국이 주요 수배자에 대해 인터폴에 송환을 요구하는 것을 뜻하며, 188개 인터폴 회원국 경찰 당국에 통보된다.

폴란스키 감독은 1977년 미국 LA에 있는 친구 잭 니컬슨의 집에서 촬영 작업을 하던 중 모델 사만다 가이머(당시 13세)에게 샴페인과 수면제를 먹이고 성폭행한 혐의로 체포됐다. 체포 당시 그에게 적용된 혐의는 성폭행이었지만, 유죄를 인정하는 조건으로 이듬해 ‘불법 성관계’로 감형됐다. 폴란스키는 형이 선고되기 전 유럽으로 도피했다.

‘피아니스트’(2002)로 아카데미 감독상 수상자로 선정되고도 도피자 신분이어서 시상식에 불참했던 폴란스키는 지난해 9월26일 취리히 공항에서 스위스 경찰에 체포됐다. 취리히 영화제 조직위원회 초청으로 공로상을 받기 위해 입국하던 길이었다. 4주간 수감 생활을 한 그는 450만달러의 보석금을 내고 다시 석방됐다. 그 후로 지금까지 전자팔찌를 차고 스위스에 있는 자신의 사유지 1800㎡로 이동범위가 제한되는 연금 상태로 지내왔다.

12일 스위스 법무부는 “미국이 1977년 당시 폴란스키의 수감 자료를 제대로 제공하지 않았다”며 “미국의 송환 요구를 거부할 것이며 폴란스키는 이날부터 자유의 몸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스위스 정부는 미국의 송환 요구를 거부한 이유에 대해 “1978년 이미 처벌을 받았기 때문에 일사부재리 원칙에 따라 송환돼서는 안된다는 폴란스키측의 주장을 미국이 뒤집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스위스 정부의 발표 이후 현지 언론 등은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지 않음을 인정한 것” “폴란스키가 아니라 무명 배우였다면 미국으로 송환돼 법정에 세워졌을 것”이라며 비판했다. 한 신문은 “아마도 미래에는 세계적 감독만큼 로비를 하지 않은 범죄자도 혜택을 볼 수 있을 것”이라며 석방 결정이 로비에 따른 것이었음을 시사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