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 일병 김정우(28)의 7일 스케줄은 영화 개봉을 앞둔 스타 배우를 방불케 했다. 이날 잡힌 언론 인터뷰만 7건이었다. 그래도 그의 표정에선 피곤한 기색을 찾을 수 없었다. "월드컵이 대단하긴 한 모양"이라는 농담도 했다. '원정 월드컵 첫 16강'의 주역 김정우를 성남 국군체육부대에서 만났다.
사진 촬영을 위해 웃통을 벗어줄 수 없느냐고 하자 그는 "몸매가 별로"라며 사양했다. 팬들이 김정우의 마른 몸매에 붙여준 별명은 '뼈정우'. 김정우는 "예전엔 말랐다는 말이 싫었지만 이젠 그 별명이 맘에 든다"며 "관심을 끌어야 별명도 생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체격은 말랐지만 체력은 발군이다. 김정우가 이번 월드컵 네 경기에서 뛴 총거리는 42.39㎞. 특히 압박의 정도를 나타내는 '공 없이 뛴 거리'는 18.31㎞로 팀 내 최고였다. TV 화면엔 잘 잡히지 않았지만 풍부한 활동량으로 공·수의 밸런스를 잡아준 김정우의 활약은 한국 16강의 원동력이 됐다. 김정우는 "다른 건 몰라도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것은 내 전공"이라고 말했다.
수비형 미드필더인 김정우에게도 골 욕심이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런 질문에 대해 "당연히 골문 쪽으로 나가 골을 넣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할 역할이 있었다"고 했다. 한때는 '조명'을 받지 못한다는 상실감도 있었지만 허정무 감독의 한마디에 마음을 고쳐먹었다. "감독님이 '네가 잘 해줘야 우리가 이긴다. 네가 가장 중요하다'고 한 말씀이 아직도 가슴에 남아 있습니다."
"후방에서 상대 공을 빼앗아 앞으로 패스할 때 희열을 느낀다"는 김정우의 말을 들으면서 그가 얼마나 자신의 포지션에 충실했는가를 느낄 수 있었다.
김정우는 지금도 남아공을 떠올리면 환희와 아쉬움이 교차한다. 김정우는 "나이지리아전은 상대가 좋은 찬스를 많이 놓치는 등 솔직히 운이 좋았다"며 "어쨌든 우리는 16강에 올랐고, 그 성취감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가장 아쉬운 순간은 16강전 우루과이의 두 번째 골 장면이었다고 한다. 페널티지역 왼쪽에 있던 수아레스가 공을 툭 치고 나갈 때 김정우는 잽싸게 발을 뻗었지만 공은 그의 발을 스쳐 지나가고 말았다. "비에 미끄러지며 수아레스를 놓쳤습니다. 슈팅이 날아가는 순간 '골대 맞고 나와라' 하고 주문을 걸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김정우는 최근 TV로 월드컵 경기를 볼 때면 '내가 저런 대단한 무대에서 뛰었나'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군인 신분으로 되돌아온 그는 9일 5주간의 기초 군사훈련을 위해 논산 훈련소에 입소한다. 지난해 11월 군에 입대했지만 축구 대표팀 훈련 일정 때문에 아직 기초 훈련도 끝내지 못했다. 배우 이연두(26)씨와 3년째 열애 중인 김정우는 "데이트 한 번 제대로 못해서 아쉽다"고 했다.
앞으로 목표를 묻자 "아시안컵(2011년 1월) 우승"이란 답이 돌아왔다. "최종 목표는 2014년에 브라질로 가는 겁니다. 한 번 해 봤으니 4년 뒤 월드컵에선 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