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독립선언에 참여했던 존 애덤스 제2대 미국 대통령은 아내 아비게일에게 보내는 편지에 “독립기념일은 미국 전체에서 흥겨운 축제가 벌어지는 날이 될 것”이라고 썼다. 그의 예견대로 매년 7월4일은 미국 전역에서 독립기념일을 축하하는 화려한 불꽃놀이 등 축제가 펼쳐진다. 하지만 그가 미처 예상하지 못한 것들도 있다고 미국의 빌링스 가제트가 4일 보도했다.

①독립기념일은 원래 7월2일이었다?

몬태나 주립대학의 역사학과장인 매트 레딩거(Redinger) 교수는 “애덤스가 축제가 벌어질 것이라고 생각한 날짜는 7월4일이 아니라 2일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13개 식민지의 대표자 회의인 ‘대륙회의(Continental Congress)’가 미국의 독립과 연방국가의 건설을 명시한 결의안을 채택한 날이 독립기념일이 될 것으로 생각했으리라는 것이다.

버지니아주의 리처드 헨리 리가 상정한 이 결의안이 채택된 것은 1776년 7월2일이다. 하지만 미국 독립선언문이 발표되는 것은 이틀 뒤인 7월4일이었다. 식민지들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기로 결의한 이유를 밝힌 수정안에 의해 독립선언문가 다시 채택된 것이다. 독립선언문을 기초한 것은 나중에 미국의 3대 대통령이 되는 토머스 제퍼슨이었다.

레딩거는 “독립선언문 발표 2년 후인 1778년부터 7월4일이 독립기념일로 기념돼 왔다”고 말했다.

②모든 식민지의 ‘만장일치’로 독립을 결의했다?

독립선언문의 도입부에는 "아메리카 합중국 13개 주 만장일치에 의한 선언(The unanimous Declaration of the thirteen united States of America)"라는 표현이 나온다. 그러나 뉴욕주는 1776년 7월15일까지 독립선언을 승인하지 않았다. 따라서 '만장일치(unanimous)'라는 표현은 실제로는 성립되지 않는다.
레딩거 교수는 "7월4일 각 식민지 대표들이 독립선언문에 서명했을 거라는 대다수 미국인들의 생각과 달리 대표 대부분은 8월2일이 돼서야 서명했다"고 말했다.

③독립선언문 서명을 둘러싼 우여곡절들
독립선언문에 각 식민지 대표들이 서명하는 과정도 순탄치 않았다.
존 핸콕은 영국 왕 조지3세가 자신이 서명한 사실을 돋보기를 끼지 않고도 알아볼 수 있어야 한다며 큰 글씨로 서명했다. 하지만 이 독립선언문은 조지3세에게는 전달되지도 않았다. 또 서명자들이 영국에 체포될 것을 우려해 서명 직후에는 서명자 가운데 2명의 신원만 공개됐다. 모든 서명자의 이름이 공개되는 것은 6개월 후 미국이 트렌튼과 프린스턴에서 영국에 승리를 거둔 뒤였다.

독립전쟁 기간에 서명자 가운데 5명이 영국에 체포됐다. 이 중 뉴저지주의 리처드 스탁턴은 고문 때문에 서명을 철회하고 영국 왕에게 충성을 맹세하기도 했다. 스탁턴은 나중에 다시 미국 독립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독립선언문을 기초한 제퍼슨이 선언문 내용에 대해 크게 화를 내는 일도 벌어졌다.
제퍼슨은 선언문에서 노예제를 옹호하는 영국을 신랄하게 비판했는데, 사우스캐롤라이나와 조지아주 대표에 의해 이 부분이 삭제된 것이다. 스미스 교수는 "제퍼슨도 노예 소유주였지만 당시의 제퍼슨은 급진적으로 자유를 옹호했다"며 "1790년대가 되면 제퍼슨은 노예제에 대해 독립선언문 채택 당시보다 후퇴해 보수적인 입장을 보이게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