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산 아저씨는 터키군으로 6·25동란에 참석했다. 그러나 휴전 후에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한국에 남아 정육점을 운영하고 있다.
가슴에 깊숙한 흉터를 남긴 총상과 전투 중에 누군가의 살점을 무의식중에 먹었다는 트라우마(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때문이다. 독실한 무슬림임에도 돼지고기를 파는 모순된 생활을 하는 것도 모두 전쟁의 상처 탓이다.
그러다 하산 아저씨는 고아를 입양한다. 그의 마음에 들어온 아이는 눈에 깊고 큰 상처가 있다. 그렇게 소통할 수 있는 하나의 끈을 만들어 점차 세상을 알아가는 법칙을 하나씩 발견해나간다.
소설가 손홍규(35)의 첫 성장소설 ‘이슬람 정육점’은 6·25에 참전했다가 한국에 눌러 살게 된 터키인이 상처투성이인 아이를 입양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출판사 문학과지성사가 내놓는 청소년 문학선 ‘문지 푸른문학’ 열 번째 권이기도 한 이 소설은 서울의 이슬람 사원 주변이 배경이다. 허름한 골목에 모인 지질한 인생들과 부대끼며 깊은 상처를 치유하는 소년의 가슴 따뜻한 성장과정을 따라간다.
손씨는 28일 “한국 사회에서 이슬람인으로 산다는 것은 노동자나 비정규직으로 산다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며 “그런 것들이 합쳐져서 이 소설이 나온 것 같다”고 밝혔다. 6·25 발발 60주년이 됐다고 맞춰서 내놓은 기념작이 아니다. “6·25와 관련된 작품을 쓰기 위해 몇 년 전부터 준비해왔다”며 “6·25에 유엔군으로 참전했던 나라들 중 그리스와 터키의 역사를 살펴보고 지금까지 내 스스로 느끼지 못한 것을 발견한다는 의미에서 집필했다”고 설명했다.
손씨는 그리스와 터키에 가 본 적이 없다. 서울 이태원의 이슬람 사원을 7~8번 정도 다녀왔을 뿐이다. 그리스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1883~1957), 터키 작가 아지스 네신(1915~1995)의 소설을 읽으며 매일처럼 두 나라를 방문했다. “소설을 읽는 행위도 내게는 일종의 취재였다”며 “이를 통해 그 사람들의 근원에 다다르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그에게 6·25는 비열한 전쟁이다. “전쟁의 원인이 됐던 갈등이 6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해결되지 않고 잘게 부숴져 남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참하다고 회피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럴수록 치부와 대면해야 아픈 기억을 치유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기존의 6·25 관련 소설들에 아쉬움도 표했다. “지금보다 사회 분위기가 경직된 상황에서 나온 작품들이라 돌려 말하는, 즉 미학적으로 뛰어나다”는 점은 인정했다. 다만 “그것을 선명한 이미지로 부각시켜 우리의 문제로 돌려세우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전쟁을 체험하지 않은 세대가 색다른 방식으로 그리는 소설이 나와야 한다”며 “체험에서 우러나오는 뼈아픈 글도 필요하지만, 다른 방식으로 써내려가는 글도 필요할 것 같다는 바람에서 소설을 써갔다”고 전했다.
소설에는 하산 아저씨뿐 아니라 그리스 내전 당시 사촌 일가를 적으로 오인 사살한 죄책감으로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그리스인 야모스 아저씨를 비롯, 전쟁의 상처로 기억을 송두리째 잃어버린 후 자신과는 관련도 없는 역사를 주입하고 있는 대머리 아저씨 등 다양한 군상이 등장한다. “이 인물들이 누구를 상징한다기보다는 하나의 총체적인 이미지로 그려지기를 원했다”며 “내 소설에서는 인물들이 기능적인 역할을 담당한다기보다 주제를 표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소설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무슬림이면서도 돼지고기를 파는, 정육점을 운영하는 하산 아저씨라는 캐릭터다. “하산 아저씨의 그런 행위는 일종의 종교적인 타락”이라면서도 “인간적인 타락까지 나아간 것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자신의 상처와 직접적으로 대면하는 방식 중의 하나”라는 것이다. “전쟁은 인류가 타락해 발생한 것이라 할 수 있지만, 인간 자체까지 근원적으로 타락시키지는 못한다”며 “하산 아저씨가 정육점을 운영하는 것도 타락의 증거이지만, 완전히 타락하지는 않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이슬람 금기에 어긋나는 그런 행태가 인간이 자신의 상처를 피하면서도 대면해나가는 식의 양면성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240쪽, 9000원, 문학과지성사
동국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한 손씨는 2001년 ‘작가세계’ 신인상을 차지하며 등단했다. 소설집 ‘사람의 신화’ ‘봉섭이 가라사대’, 장편소설 ‘귀신의 시대’ ‘청년의사 장기려’ 등을 내놨다. 2004년 대산창작기금을 받았으며 2008년 제5회 제비꽃서민소설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