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生과 死의 경계선… GP 초병들의 생활
동부전선 ○○통문 앞에 선 것은 지난 2월 초. ○○○ GP(최전방 경계 소초)로 향하는 이 통문 주변 순찰로는 길을 따라 눈길을 주는 것만으로도 목이 꺾일 듯 젖혀지는 급경사다. "무릎은 아리고 정신은 아득하고 목은 타들어가고… 아래로 떨어져 내리고 싶은 심정이었다"고 예전 이곳서 근무했던 대위가 당시를 떠올리며 토로할 정도다. 이 GP는 북한군 3개 GP와 맞선 곳으로 지하벙커 같은 생활관이 1층 상황실·체육관으로 연결된 구조다. 이 GP에서 직선거리 1.6㎞인 북한 GP는 그 안의 병력과 화기가 파악될 만큼 가깝다.
◆유서 미리 쓰며 각오 다져
'이 글을 읽을 때쯤이면 나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겠지. 엄마, 또 울 거지? 난 엄마 우는 게 싫은데. 전역하면 돈 벌어서 아빠 큰 TV 사주고 엄마 맛있는 거 사줘야 하는데.'(이모 일병). '이 편지가 전해졌다면 전역을 얼마 안 남긴 내가 이 세상에 없다는 의미겠지. 하지만 우리는 반드시 승리할 거고, 제 죽음은 헛된 게 아닐 겁니다. 내 친구이자 동반자인 동생 ○○아. 치킨에다 생맥주 같이 먹고 싶은데. 너와 나를 낳아준 부모님 사랑합니다.'(유 모 병장).
GP 생활관 한편엔 예전 사진기 필름통에 돌돌 말아 끼워넣어져 보관된 유서들이 나란히 놓인 유서함이 눈에 띈다. "이곳 GP만의 독특한 전통으로 이어져 온 것으로 몇몇 병사는 머리카락을 함께 넣었을 만큼 비장함을 담는다"고 김준형(가명) GP장(중위)은 설명했다. "GP에 투입된 당일 각자의 다짐을 새롭게 한다는 의미에서 자신한테 편지를 쓴다"고 사단 정훈공보장교(중위)는 말했다. 이모 일병은 "실제 유서를 쓰는 상황이라고 감정이입해 썼다. GP 경험은 이번이 처음인데 끝까지 최선을 다해 명예롭게 전역하고 싶다"고 했다.
○○○GP에서 조금 떨어진 일명 장군봉 GP는 6·25 당시 격전지로 북한 GP까지 직선거리로 1.9㎞ 떨어져 있다. 지난 2월 이 GP로 가는 길엔 함박눈이 장맛비처럼 쏟아졌고 그 눈 사이로 귀순자 유도함이 눈에 띄었다. 김상호(가명) 중위는 "손전등·배터리·야광봉·양초를 안에 넣어 두었고, 벨을 누르면 우리 근무자와 하루 24시간 연락되게 돼 있다"고 설명한다. 이런 날씨엔 비무장지대(DMZ) 바깥과 GP를 연결하는 찻길에서 체인 감은 군용지프를 포함해 모든 차량 운행이 통제된다.
한동안 멎었던 눈발이 GP 취재를 마치고 DMZ 밖으로 빠져나올 무렵 더 세차졌다. 통문을 통해 남방한계선 철책 밖으로 나오니 눈을 뒤집어쓴 병사들이 묵직한 더플백을 짊어지고 힘겨운 발걸음을 시작한다. 양파·두부·당근·감자·마늘·양상추…. 전방에선 특히 귀중한 식재료가 그 안에 담겨 있다. 우유곽이 터질세라, 달걀이 깨질세라 가파른 오르막길 눈보라 속으로 조심스레 들어가는 병사들 뒷모습이 딱하고도 대견하다. GP는 눈·비에 쉽게 고립되는 공간이라 통행이 완전 두절될 때를 대비해 사나흘치 분량의 김치를 독에 담아 땅에 묻어두기도 했다.
◆황금마차는 '그림의 떡'
전방부대 누군가에게 위문품을 보낼 경우 수취인의 열광까지는 몰라도 미소를 기대해도 좋을 물품은 여전히 과자(간식)류다. 배식의 격이 높아졌다 해도 고된 훈련을 견뎌야 하는 청춘 장정(壯丁)은 늘 배가 고프다. GP에 근무하는 최모 일병은 "GP 동료들끼리는 사정을 잘 알기 때문에 휴가를 나오면 동료에게 소포로 과자를 보내곤 한다"고 말했다. 적잖은 GP가 TV 난청 지역이고 독서·편지쓰기·족구·장기 정도 말고는 소일거리가 흔치 않은 형편, 충성마트(PX)도 황금마차(부대 내 충성마트가 없는 전방지역 순회 PX 트럭. 차량 겉면이 노란색이다)도 없어 먹는 낙(樂)조차 충족 못할 사정 말이다.
황금마차의 인기는 여전하지만 남방한계선에 설치된 일반전초(GOP)까지만 들어올 수 있다. DMZ 안에 사는 GP 장병들에게 황금마차는 그래서 '그림의 떡'이다. 전방지역 GOP에서는 황금마차에서 비누·샴푸·화장품을 구입해 쓰는 병사들을 흔히 만날 수 있었다. PX가 있는 강원도의 GOP 지역에선 부대에서 가장 가까운 PX까지 2시간 동안 산길을 걷고 뛰어 과자를 사먹고 돌아오는 병사를 볼 수 있었다.
GP 중에는 부적응 병사의 총기 난사사건 등으로 슬픔을 겪었던 곳도 있었다. 이런 일들로 인해 폐쇄회로(CC)TV가 GP 내 곳곳에 설치돼 불편을 호소하는 병사들도 있었다.
(※기사 속 인물들의 실명을 공개할 경우 북한의 대남 심리전에 악용되는 등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육군본부 실무자의 조언에 따라 모두 가명 또는 익명으로 작성했습니다.)
특별취재팀이 비무장지대 일원에서 촬영한 사진들은 인터넷(dmz.chosun.com)과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열리고 있는 6·25전쟁 60주년 특별기획전 ‘아! 6·25’, 조선일보 창간 90주년 기념 ‘Inside the DMZ 사진영상전’에서 볼 수 있습니다.
〈DMZ 특별취재팀〉
▲사진·영상 이기원 부장, 최순호·정경열·주완중·채승우 차장대우, 이재호·민봉기 기자(이상 사진부)
▲취재 유용원 군사전문기자(정치부), 박영석 차장대우(사회부), 최수현 기자(사회정책부)
▲영상 총감독 박종우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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