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그리스의 운명을 건 일전(一戰)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한국은 12일 오후 8시 30분(한국 시각) 그리스와 남아공 남부 해안도시 포트엘리자베스에서 월드컵 B조 첫 경기를 치른다. 사실상 한국의 16강 진출이 걸린 승부다.
포트 엘리자베스는 '바람의 도시(windy city)'라고 불릴 정도로 바람이 강한 곳이다. 남아공 기상대는 경기 당일인 12일에 구름이 조금 낀 화창한 날씨가 되겠지만 초속 5.3~10.3m의 강풍이 불 것으로 예보했다. 초속 10.3m면 시속 37㎞에 해당한다. 그리스전은 현지 시각으로 오후 1시 30분에 시작되며 전반전이 진행되는 오후 2시쯤에는 초속 6.1m의 서남서(西南西)풍이 불 것으로 예보됐다.
이 정도 세기의 바람이면 흙바닥에서 모래먼지가 일고 바닥의 종잇조각들이 춤추듯 흩날리는 강도라고 기상청은 설명했다. 그리스전의 바람은 어떤 변수(變數)로 작용할까.
■30m 중거리슛이 2m11 휘어져
안창림 이화여대 물리학과 교수가 경기 당일의 바람이 축구공 궤적에 미칠 영향을 계산한 결과 공의 진로가 강풍의 영향으로 적지않게 달라질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 당일엔 초속 6.1m의 서남서풍이 운동장을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듯 불 전망이다. 키커가 이 바람을 뒤쪽에서 받으며 북쪽 골대를 향해 슈팅할 경우를 가정해 봤다. 키커가 골대에서 30m 떨어진 지점에서 시속 100㎞로 스핀이 없는 직선킥을 할 경우 바람이 없을 때에 비해 골대 부근에서 공이 오른쪽으로 최대 2m11 밀려서 통과한다는 계산이 나왔다. 바람의 힘이 공을 2m11만큼 밀어낸다는 얘기다. 골대의 가로 길이가 7m32인 점을 고려하면 큰 변화다. "공에 강한 스핀을 넣어 찰 경우 자체 회전력만으로 심하게 꺾이게 돼, 직선 킥에 비해 바람에 따른 변화가 덜 하지만 골키퍼는 바짝 긴장해야 할 것"이라고 안 교수는 말했다.
그리스전이 열리는 넬슨 만델라 베이 스타디움에는 외벽이 있기 때문에 바람의 실제 영향은 이보다는 적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본지가 지난달 취재차 이 경기장을 찾았을 때 경기장 안에서 수시로 돌풍이 부는 등 '방풍 설계'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였다. 지난 1월 대표팀이 이곳에서 남아공 프로팀과 평가전을 치렀을 때 선수들이 바람 때문에 공의 위치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해 허둥대는 경우가 나왔다. 12일에도 선수들이 바람의 변수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낮은 크로스로 공격해야
한국의 상대인 그리스는 23명의 엔트리 중 1m90을 넘는 선수가 7명에 달하는 장신 팀이다. 공격도 제공권(헤딩)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스의 수비수 유르카스 세이타리디스는 8일 요하네스버그 공개 훈련 때 "우리는 키가 커서 하이 볼(high ball·높은 공)을 잘 따낼 수 있다. 코너킥과 프리킥 때 승부를 걸겠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전 전략 포인트를 '하이 볼'이라고 강조했다. 공중볼에 자신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강한 바람이 어느 팀에 유리할지는 전문가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조영증 대한축구협회 기술국장은 "한국의 장기인 측면 돌파 후 공을 투입하는 크로스의 정확도가 떨어질 수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바람이 한국 팀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반면 이용수 세종대 교수(KBS해설위원)는 "바람은 어느 팀이 잘 이용하느냐에 달렸다"고 말했다. 바람을 등지고 공격할 경우 장신 수비벽을 뚫을 수 있는 과감한 중거리슛을 활용할 수 있다는 얘기였다.
한국 코칭 스태프는 장신팀 그리스를 맞아 낮은 크로스와 스피드 있는 공격으로 승부를 낸다는 전략이다. 허벅지 부상에서 벗어나 그리스전 출전을 준비하고 있는 이동국은 "높게 올라오는 크로스보다는 낮고 날카로운 세트 플레이가 상대 수비수를 괴롭힐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안창림 교수는
▲1962년 2월 2일 서울 출생 ▲동성중, 대일고, 서울대 물리학과 졸업, 미 스탠퍼드대 물리학박사 ▲코넬대 연구원(1989~92년), 이화여대 물리학과 교수(199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