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의 고질적 문제는 정답(正答)을 알고 있으면서도 행동할 때가 되면 정답과 다른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6·2 지방선거 참패 반성대회에서도 이 병(病)은 어김없이 도졌다. 7일 열린 의원 연찬회에서 의원들은 "당이 대(對)국민 소통에 실패했다"면서 국정 운영 방식과 기조의 변화, 지역 편중 인사 시정, 당 지도부 세대교체 등의 주장을 들고 나왔다. "청와대 참모들이 대통령의 눈·귀를 막아 대통령에게 민심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것은 물론 민심을 제대로 파악 못했다", "청와대는 국민이 뽑아준 대통령 말고는 참모를 모두 바꿔야 한다"는 얘기도 나왔다.

한나라당이 지난해 4월과 10월 재·보선에서 잇따라 완패(完敗)했을 때도 들고 나온 정답은 이번과 대동소이(大同小異)했다. 소리는 태산(泰山)을 울릴 정도로 요란했으나 거둔 것은 정무장관(특임장관) 신설과, 회전문(回轉門)을 들고나는 식의 당 지도부 교체 정도였다. 큰 칼을 들고 환부(患部)를 도려낼 듯하더니 환부 언저리만 건드리고 주저앉고 만 것이다. 잔뜩 기대했던 국민의 실망만 키우고 말았다.

한나라당의 근본 문제는 국민과의 소통(疏通), 다시 말해 한나라당 국정 운영에 대한 국민의 반응이 정치 중심에 재(再)투입돼 정치를 환경에 적응시키는 환류(還流·feedback) 기능이 마비돼 있다는 것이다. 국민은 한나라당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한나라당보다 더 잘 안다. 그러나 이런 국민 반응이 당을 변화시키지는 못한다. 안테나가 고장 난 데다 국민의 소리를 일부 청취(聽取)해도 그것을 실천할 용기가 없다.

지난해 4월 재·보선 패배 후 한나라당 쇄신특위가 "(대통령이) 박근혜 전 대표와의 국정동반자 약속을 제대로 실천하지 않아 '여당 내 야당'이 부각됐고, 대통령의 포용력 부족 인상이 심화됐다"고 진단했었다. 이번에 박 전 대표는 아예 선거 전부터 "선거는 당 지도부가 책임질 일"이라며 선을 긋고 선거 내내 자신의 지역구에 머물며 자치단체장 선거에만 매달렸다. 물론 그 단체장조차 당선시키지 못한 박 전 대표가 나섰다 해서 결과가 얼마나 달라졌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긴 하다. 그러나 주류 비주류로 갈리고 비주류 색깔도 저마다인 민주당조차 당(黨)이 위기라는 전망이 서자 비주류 중진들을 모두 선대위 지도부에 앉혀 전국 유세에 투입했었다.

대통령은 청와대 안에선 수석들로부터, 청와대 밖에선 총리 이하 장관들과 한나라당 지휘부로부터 민심(民心)의 동향을 듣는다. 이들은 세종시 수정 문제로 충청권이 돌아섰다는 소식, 불도저식 4대강 사업 추진 방식 때문에 이 사업을 지지하는 사람조차도 걱정하고, 반대하는 사람은 반대의 뜻을 더 굳히게 만들어 군사정부 시절 이후 처음으로 범종단(汎宗團) 반대 연대까지 형성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들은 대통령을 향해 입을 열지 못했다.

이 정부는 역대 정권 가운데 선거 승리에 대한 지역적 빚이 상대적으로 가장 적은 정권이다. 그래서 각종 연(緣)에 밀려다녔던 우리 정부 인사 방식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upgrade)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받았다. 그런데도 과거의 편중된 인사 방식을 되밟아 지역 간 분쟁을 재연시키고 말았다.

천안함 사건을 저지른 북한의 무법무도(無法無道)한 태도를 변화시키기 위해 단호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국민 대다수의 공감대(共感帶)는 넓고 깊었다. 이 공감대가 북한 책임을 외면하던 야당이 '북한 소행이라면 책임져야 한다'고 돌아설 수밖에 없게 만든 것이다. 그러나 여권은 안보문제는 가급적 선거 이슈로 휘말리는 것을 막아야 국민 일체감(一體感)을 유도할 수 있다는 기본에 충실하지 못했다. 그러면서 때로 선(線)을 넘는 발언들로 국민 사이에 전쟁의 불안을 키워 오히려 역작용(逆作用)을 불러왔다.

여권의 근본 문제는 청와대 비서실도, 내각도, 한나라당 지휘부도 이런 민심을 들을 만큼 들었으면서 대통령에게 직언(直言)해 국정의 방향을 바꾸지 못했다는 것이다. 민심과 정치의 중추(中樞) 사이를 연결해 반응과 재반응, 수정과 재수정의 기능을 제대로 해줘야 할 '민심 순환'의 벨트가 끊어져 버린 것이다. 이래서는 어떤 국정도 제대로 돌아갈 수 없다. 지금처럼 민심의 바퀴와 국정 운영의 바퀴가 따로 돈다면 여권은 곧 이을 재·보선은 물론 다음 총선과 대선도 또 놓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청와대에, 내각에, 당에 제대로 듣고 제대로 말하는 사람을 골라 앉히라는 것이다. 그들의 귀와 입이 온전해야 민심을 제대로 전해 국정의 바퀴가 올바로 돌아가고 떠나갔던 민심도 되돌아올 길이 열린다.

[오늘의 사설]
[사설] 야권 단체장, 정치투쟁 골몰하면 국민 돌아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