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의령군 유곡면에는 둘레 7m, 키 15m에 달하는 500년 넘은 느티나무가 서 있다. 임진왜란 최초의 의병장 곽재우가 병사를 모으기 위해 큰 북을 내걸었던 나무다. 의령군은 해마다 4월 의병제전을 열 때면 이 나무 아래서 성화를 채화한다. 1592년 봄 부산으로 쳐들어온 왜군은 20일 만에 수도 한양을 무너뜨렸다. 10명밖에 안 되는 집안 젊은이로 시작한 곽재우 의병은 왜군을 상대로 수많은 전과를 올리며 반전(反轉)의 기틀을 마련했다.
▶'見危授命(견위수명·나라가 위태로우면 목숨을 바친다)'이 곽재우의 신조였다. 그는 아버지가 명나라 사신으로 갔을 때 받아온 붉은 비단으로 장수복을 지어 입어 '홍의장군(紅衣將軍)'이라 불렸다. 왜군이 홍의장군을 잡느라 혈안이 됐다는 얘기를 듣고는 여러 병사에게 붉은 옷을 입혀 왜군을 헷갈리게 하고 게릴라 전술로 무찔렀다. 왜군 2000명을 죽인 정암진 전투는 관군·의병 통틀어 임란 때 우리가 육지에서 거둔 첫 승리였다.
▶우리나라는 삼국시대부터 조선 말까지 숱한 외침(外侵)을 받았다. 조정과 관군이 제 구실을 못해 백성이 고통받을 때마다 의병이 나타나 나라를 구했다. 상해임시정부 대통령을 지낸 민족주의 사학자 박은식은 이런 의병 정신을 "우리 민족의 본성(國性)"이라고 했다. 그는 우리가 어느 침략자에게도 정복당하거나 동화되지 않은 것은 바로 의병정신이 있었던 덕이라고 했다.
▶하얼빈에서 침략자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안중근 의사가 스스로 '대한 의군(義軍) 참모중장'이라고 부른 것도 의병정신의 연장이다. 영국 언론인 매켄지는 한말 일제 침략에 맞서는 의병을 취재해 이렇게 썼다. "그들은 몸은 쇠약하고 얼굴은 그을렸으며 피로해 보였다. 그러나 영롱한 눈초리와 자신만만한 미소를 보았을 때 나는 확연히 깨달았다. 그들은 애국심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있었다."
▶오늘 1일 정부가 국가기념일로 제정해 처음 맞는 '의병의 날'이다. '6월 1일'은 곽재우가 의병을 일으킨 1592년 4월 22일을 양력으로 환산한 날짜다. 나라가 바람 앞의 촛불처럼 위태로울 때 나라 구하기에 기꺼이 목숨과 재산을 바쳤던 의병 선조들의 숭고한 희생을 새삼 생각한다. 이런 의병이 전혀 필요없는 나라가 되도록 이끌어야 하는 위정자의 책임은 얼마나 큰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