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4일 발생한 아이슬란드 에이야프얄라요쿨 화산 폭발과 관련해 영국 가디언지는 "아이슬랜드의 화산 폭발은 역사적으로 1789년 프랑스 혁명의 주요 원인이 될 정도로 심각한 사건"이라고 보도했다. 가디언지 4월 17일

에이야프얄라요쿨 화산이 다시 화산재를 뿜어내면서 유럽 대륙에 근심이 짙다. 227년 전 사건이 떠오른 것이다. 영국 에든버러대 화산 전문가 토르발뒤르 토르다르손 교수는 '뉴사이언티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1783년 아이슬란드 라키 화산이 폭발했을 때는 가축의 반이 죽고 주민의 4분의 1이 굶어 죽었다. 이번 폭발은 이에 버금가는 초대형 폭발로 이어질 수 있다." 라키 화산 폭발은 유럽대륙이 겪은 재난 가운데 최악으로 꼽힌다.

1783년 6월 8일 아이슬란드 남부 라키 화산이 폭발했다. 8개월 동안 분출된 화산재는 유럽은 물론 북미, 아프리카, 아시아까지 날아갔다. 당시 사태를 목격한 아이슬란드의 성공회 신부 욘 스테인그림손은 "대지의 모든 식물은 불탔고 들판 곳곳에서 불길이 솟구쳤다"고 기록했다.

지난달 폭발한 아이슬란드 에이야프얄라요쿨 화산 모습. 인류의 사회ㆍ경제의 흐름이 자연재해로 바뀔 수 있다는 대표적인 예다.

라키 화산과 맞붙어 있는 다른 화산들이 연쇄적으로 마그마를 쏟으면서 1784년까지 아이슬란드는 화산재는 물론 유독가스인 이산화황과 수소화붕소를 유럽 대륙 전역에 쏟아부었다.

들판에 방목해 기르던 가축들과 야외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은 폐와 기관지가 막히며 질식사가 속출했다. 당시 분출된 이산화황 양은 2006년 유럽 전역의 공업지대가 쏟은 양의 세 배였다.

천둥·번개와 우박이 몰아쳤지만 여름 기온은 지옥처럼 높았다. 가을 무렵 안개가 걷혔다. 이번에는 혹독한 겨울이 찾아왔다. 화산재는 북미대륙까지 날아가 1784년 겨울은 지금까지 미국 역사상 최악의 혹한으로 기록돼 있다.

벤저민 프랭클린은 "1783년 겨울에 내렸던 첫눈이 해가 바뀌고 봄이 올 때까지 녹지 않고 그 위로 폭설이 계속 쌓였다"고 기록했다. 문제는 프랑스였다. 북해(北海)를 건너온 화산재는 프랑스 전역에 이상기후를 불러왔다.

1785년 가을 프랑스 농민들은 유례없는 풍작을 거뒀다. 곡물가격을 유지하기 위해 중간상은 물론 농민들은 곡식을 대거 폐기해버렸다. 이로 인해 도시 노동자들이 빈민으로 전락했다. 그리고 혹독한 겨울과 기근이 반복됐다.

마침내 1788년 프랑스 전역에 주먹만한 우박이 쏟아졌다. 1년의 풍작에 이은 기근이 3년을 갔다. 프랑스 화산학자 자크 생테즈는 "누적된 빈곤과 기근의 심화가 1789년 프랑스 혁명의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가 됐다"고 주장했다.

당시 프랑스 왕은 루이 16세였다. 그는 영국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 독립운동에 군비를 지원하고 그 막대한 재정 적자를 세금 징수로 메웠다. 왕실에는 금과 꿀이 넘쳐났지만 국민들은 등골이 휘어나갔다.

프랑스혁명 당시 시민들의 요구는 "우리에게 빵을!"이었다. 이 주장에 당시 왕비였던 마리 앙투아네트가 "빵이 없으면 사탕을 먹으면 되지"라고 대꾸했다는 소문에 시민들은 바스티유 감옥으로 쳐들어갔다.

감옥이 함락된 그날이 바로 대혁명의 시작인 1789년 7월 14일이었다. 한 나라의 자연 재앙이 이웃나라의 사회·경제적인 구조를 혁명적으로 바꾼 것이다. 문제는 21세기에 터진 아이슬란드 사태가 이제 시작이라는 점이다.

아이슬란드대 화산학자인 비료른 오르손 교수는 AFP통신과 인터뷰에서 "1100년간 아이슬란드에서 일어난 205개 화산폭발을 분석한 결과 140년 주기로 화산이 폭발했으며 앞으로 수십년간 아이슬란드 화산들이 연쇄 폭발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영국 오픈대학교 화산학 박사 존 머레이는 가디언지와 인터뷰에서 "화산 폭발은 이후 2~4년 동안 기상학적인 영향력을 갖는다"며 "역사적으로는 사회·경제적, 심지어는 정치적인 부분에도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