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책은 지시한다. '푹 고아라.' '한소끔 끓여라.' 도대체 얼마가 '푹'이고 어느 정도가 '한소끔'일까. 한국전통음식연구소 윤숙자 소장은 이처럼 애매한 조리법이 한식 세계화의 걸림돌 중 하나라고 지적한다. '손맛'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제대로 된 한식의 맛을 외국인에게 각인시키기 어렵기 때문이다.
12년 전 연구소를 세우고 한식 조리법을 연구해온 윤 소장이 최근 '한국음식조리법 표준화 600선'을 완간했다. 2006년 펴낸 '아름다운 한국음식 300선'에 이어 이번에 '건강밥상 300선'을 내놓았다. 20일 종로구 와룡동 연구소에서 만난 그는 "세계 어느 누가 요리하더라도 동일한 '한국의 맛'을 낼 수 있도록 준비했다"며 "한국에 온 외국인은 물론, 요리 초보자도 좋은 맛을 낼 수 있도록 정확한 조리법을 담았다"고 말했다.
집필에는 각 대학 조리학부 교수 등 연구원 15명이 참여했다. 밥·찌개·생채·조림 등 종류별로 600가지 요리가 담겼다. 다듬기 전 재료의 분량은 물론 조리 후 중량, 적정 배식 온도, 총가열시간, 총조리시간, 냄비의 크기도 명시했다. 센불·중불·약불에 몇 분 끓여야 하는지도 제시했다.
한국적 맛을 찾기 위해 16세기 '수운잡방', 17세기 '요록', 18세기 '증보살림경제' 등 고서(古書)를 꼼꼼하게 살폈다. 기존 요리 전문가들의 저서도 샅샅이 훑었다. 그대로 만들어보면 양이 지나치게 많거나 맵고 짜기 일쑤였다. 음식 한 가지 조리법을 완성하려면 적어도 6~7번을 다시 만들어야 했다.
"표준화와 획일화는 다릅니다. 책에 담긴 맛은 훈련된 전문가들이 '최고의 맛'으로 인정한 맛입니다. 모양새는 외국인에게 제공했을 때 훌륭하다는 말을 들을 수 있도록 깔끔하면서도 적당한 크기로 준비했어요."
가장 애를 먹은 음식은 장아찌였다. 최소 한 달은 장 속에 두어야 맛을 알 수 있기 때문에 한 번 실패하면 다시 만들기까지 시간과 공이 크게 들었다. 석 달짜리는 싱겁고 1년짜리는 짜면, 5개월 혹은 6개월짜리로 다시 담갔다.
말 그대로 '땀'도 많이 흘렸다. 모인 연구원들이 주로 교수이다 보니 여름방학에 작업을 진행했다. 에어컨이나 선풍기를 켜면 불이 바람에 흔들려 세기가 일정하지 않았다. 모든 냉방장치를 끄고, 뜨거운 불 앞에서 국을 끓이고 전을 부쳤다. 윤 소장은 "여름 내내 땀띠로 너무 고생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