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덥수룩한 수염의 괴짜
오는 5월 30일 열리는 남미(南美) 콜롬비아 대통령 선거가 74%의 높은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는 알바로 우리베 대통령의 인기를 등에 업은 집권 여당의 싱거운 승리가 될 것이란 예상과는 달리 치열한 혼전 양상을 보이고 있다. 덥수룩한 수염에 머리도 제대로 빗지 않는 '괴짜' 안타나스 모쿠스(Mockus·58) 녹색당 대통령 후보가 돌풍을 일으키며 선두로 치고 나섰기 때문이다.
현지 최대 일간지 엘티엠포는 최근 "여론조사 결과 결선투표에서 모쿠스가 52%를 득표하면서 30.5%를 얻는 집권 우(U)당의 후보인 후안 마누엘 산토스(Santos) 전 국방장관을 누를 것"으로 예상했다. 현재 지지율에서도 모쿠스 후보가 산토스 후보를 오차범위 안에서 앞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오는 30일 1차 선거에서 과반 득표자가 없으면 6월 20일에 결선투표가 열린다.
◆관심 끌려고 바지 내리기도
산토스 후보는 국방부 장관 재임시절 좌파 게릴라 소탕을 진두지휘해, 마약과 납치, 살인으로 악명 높았던 콜롬비아의 치안을 세운 주역이다. 올 초만 해도 산토스 후보의 지지율은 60%에 달했었다. 그만큼 모쿠스 돌풍은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그는 삶 자체가 '의외성'의 연속이다. 리투아니아 출신 이민자의 아들로 원래 국립 콜롬비아 대학에서 수학을 가르치던 교수였다. 수학교수였지만, 석사는 철학을 전공해 스스로를 '철학자'라고 부른다. 심지어 교수 시절엔 집중하지 않는 학생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바지를 내려 엉덩이를 보이기도 했다. 그랬던 그가 1993년 갑자기 남들이 부러워하는 국립 콜롬비아 대학의 총장직을 그만두고 수도(首都) 보고타 시장에 출마하자 주변 사람들은 경악했다. '참신함'과 '정직'을 내세운 그는 선거에서 기적적으로 승리한다.
◆"수퍼 시민이 되자"
이때부터 모쿠스의 '철학 시정(市政)'이 시작된다. 그는 '사람들이 잘못이라는 것을 알면 나쁜 짓을 하지 않을 것'이란 소크라테스의 말을 자주 인용했다. '수퍼 시민'을 만들어야 한다며 시장이 수퍼맨 옷을 입고 거리로 나가 "수퍼시민이 되자"고 소리쳤다. 보고타의 물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대규모 공사보다는 물 절약 캠페인을 전개했다. 직접 TV광고에 출연해 샤워를 하다 비누칠을 할 때 수도를 잠그며 "이대로만 해달라"고 말했다. 그 결과 두 달 만에 보고타 물 소비량이 12%가 줄었고, 그의 임기 중엔 무려 40%가 줄었다.
교통사고 사망자를 줄이기 위해 그가 한 일은 420명의 '피에로'를 도로에 세운 것이었다. 교통위반 차량에 피에로가 다가가 그 사람을 조롱하도록 한 것이다. 그가 두 번의 시장을 하는 동안 교통사고 사망률은 50%가 떨어졌다. 그가 10% 세금 더 내기 운동을 했을 때는 무려 6만3000명의 시민이 자발적으로 세금을 냈다.
◆신통찮은 경제성적표
그러나 '철학자' 시장의 경제 성적표는 신통치 않다. 대규모 공공사업을 추진했지만 실업률을 낮추지는 못했고, 투자환경을 더 좋게 바꾸지도 못했다는 평가다. 다만 돈을 안 쓰다 보니 엄청난 예산이 남았고, 후임 시장들이 그가 쌓아놓은 돈을 바탕으로 대중교통 개선사업 등 대규모 사업을 추진할 수 있었다.
보고타 사람, 특히 20~30대의 젊은이들은 그에게 열광했지만, 다른 지역 사람들에겐 그는 여전히 '괴짜'였다. 그러나 이번 선거전에선 상황이 달라졌다. 전임 보고타 시장 3명이 출마한 녹색당 경선에서 그가 이겼고, 제2의 도시인 메데인 전 시장이 부통령 후보로 그와 함께하자 갑작스러운 바람몰이가 시작된 것이다.
◆바람몰이와 치안문제
그러나 갑작스러운 바람몰이에 불안해하는 사람들도 많다. 특히 현 알바로 우리베 대통령과 산토스 후보가 지난 8년간 잡아놓은 치안과 안정적 경제성장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대통령은 "친미(親美)주의자 모쿠스가 대통령이 되면 우리와 전쟁이 날 것"이라며 노골적으로 선거에 개입하고 있지만, 오히려 모쿠스에 대한 결집효과를 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