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이 지난 지금도 독일 월드컵 얘기만 나오면 갑론을박 논쟁이 벌어지는 게 바로 스위스전 프라이의 골 장면이다. 전반 23분 센데로스에게 헤딩 선제골을 내준 한국은 0-1로 뒤진 후반 18분과 21분 해결사 안정환설기현을 잇따라 투입하며 동점골을 향해 맹렬히 추격했다. 한 골만 터뜨린다면 역전도 가능한 분위기였다. 1차전 토고전에서도 선제골을 내줬다가 내리 2골로 역전승을 거둔 아드보카트호였다. 하지만 후반 32분, 대표팀과 대한민국을 통탄에 빠뜨린 사건이 벌어졌다. 스위스 MF 마르제라즈의 스루 패스가 이 호의 발에 맞고 굴절된 것을 골잡이 프라이가 잡아 GK 이운재를 제치고 추가골을 넣은 것이다. 프라이가 볼을 받을 때 위치는 TV 화면상 오프사이드로 보였다. 부심도 오프사이드라고 깃발을 들었다. 하지만 올리손도 주심은 이를 무시하고 그대로 골로 인정했다. 주심은 이 호의 발에 맞은 걸 백패스 개념으로 받아들였다. 결국 0대2 패. 한국은 스위스, 프랑스에 밀려 3위로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누가 봐도 억울한 상황이었지만 당사자인 이영표(33ㆍ알 힐랄)는 더욱 그럴 수 밖에 없었다.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 주역 중 한 명인 이영표는 독일 월드컵에서 한국이 첫 원정 월드컵 16강 진출을 달성할 걸로 자신했다. 월드컵 4강 경험과 유럽파들의 증가, 신-구 조화가 절묘하게 이뤄졌다고 판단했다. 토고를 2대1로 물리치고 강호 프랑스와 1대1로 비겨 분위기도 상승세였다.

게다가 경기 전 PSV 에인트호벤(네덜란드) 시절 동료였던 스위스 MF 보겔과 얘기를 나누면서 '감'도 왔다. 보겔은 당시 이영표에게 "한국의 앞선 두 경기를 봤다. 한국-스위스전은 아무래도 너희에게 유리하게 돌아갈 것 같다"고 했다는 것. 선수로서의 직감이 왔단다. '스위스가 한국을 두려워하고 있구나.'

막상 경기가 시작되고 0-1로 뒤질 때도 이영표는 "진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후반 18분 공격 강화책으로 안정환과 교체 아웃되고 나서도 그랬단다.

하지만 오프사이드 논란 속에 프라이의 골이 터지자 이영표는 벤치에서 분통을 터뜨렸다. 분명 아닌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당시 "축구에 만일이란 게 존재하지 않지만, 프라이의 골이 오프사이드로 선언됐다면 충분히 동점골과 역전골이 터져나왔을 것"이라고 이영표는 아직도 굳게 믿고 있다.

아쉬움 속에 소속팀으로 복귀한 이영표는 2008년 8월 다시 독일로 갔다. 토트넘(잉글랜드)에서 독일 분데스리가 도르트문트로 이적한 것이다. 그리고 팀에 합류하자 스멀스멀 2년 전의 아쉬움이 다시 몰려왔다. 도르트문트에 프라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프라이는 도르트문트 연봉 톱 클래스 선수였다.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이영표는 인사를 겸해 프라이와 대화를 나누다가 독일 월드컵을 화두로 꺼내며 맞대결 얘기를 슬쩍 끄집어냈다. 그런데 프라이가 속을 긁어놨단다. "내가 넣은 골과 상관없이 스위스는 한국전에서 이겼을 것"이라는 말이었다. 부글부글 끓은 이영표는 오프사이드인 이유를 조목조목 설명하며 프라이와 신경전을 벌였다고 한다.

이영표는 1년 뒤 도르트문트를 떠나 지금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뛰며 3회 연속 월드컵 출전을 바라 보고 있다. 프라이의 골은 잊었다. 이젠 마지막이 될 월드컵에서 4년 전 못다 이룬 원정 16강 신화를 반드시 이루겠다는 각오만 있을 뿐이다. 대표팀의 전력이 독일 월드컵 때보다 더욱 배가돼 오프사이드 골 논란 같은 불미스러운 일은 더이상 없이 순탄하게 16강에 진출하리라 굳게 믿고 있다. 허정무 감독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도 그가 16강을 점치는 이유다. "감독을 조금이라도 평가하는 건 선수로서 옳지 않은 일이지만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게 있습니다. 대표팀과 소속팀에서 세계 여러 나라 감독을 모셔봤지만 허정무 감독은 경쟁 체제를 통해 선수들을 긴장시키고 경기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하는데 최고 수준인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