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들은 흔히 말한다. 아이가 어렸을 때는 내 말을 잘 듣고 잘 통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변해 아빠·엄마를 거부한다고. 청소년들은 이렇게 대답한다. 이해하고 인정하려는 노력 없이 일방적인 훈육으로 일관한다고.

부모는 부모대로, 자녀는 자녀대로 대화가 어렵다고 한다. 부모와 자녀 사이에 벌어지는 이 간극은 무엇 때문일까. 청소년과 자주 대화하는 전문가들의 대담을 통해 청소년들의 생각을 엿보고 이해하는 기회를 마련해봤다.

<대담참석자>왼쪽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이윤조 서울시청소년상담지원센터팀장. 정주현 경기고 교사. 일락 EBS '아름다운 밤 우리들의 라디오' 청소년 대상 프로그램 진행자. 이창호 한국청소년상담원 실장.

부모의 일방적 강요가 대화 막아

▶이윤조 팀장: 부모는 흔히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가 어느 날 갑자기 달라져 대화가 어렵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착각이다. 청소년들을 만나보면 이전부터 부모와 소통하는 것이 어려웠다고 토로한다. 아동기부터 소통 부재가 있었는데 그것이 점점 더해져 청소년기에 들어 대화를 거부하고 차단하는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창호 실장: 아동기와는 달리 청소년기는 자의식이 형성되는 때다. 희미하게 자의식이 생기고 본인의 가치와 의견이 생긴다. 미숙하지만 본인을 찾아가는 시기인데 부모는 이런 현상을 지켜보거나 이해하지 못하고 단순히 불안해한다. '요즘 아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누구를 만나는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간섭으로 흐른다는 것이 문제다. 이에 아이들은 자신의 생각을 공감받지 못한다는 이유로 아예 대화를 차단하는 것이다.

▶일락: 라디오에 사연을 보내거나 고민을 털어놓는 청소년을 보면 대개 부모와의 소통 부재로 힘들어한다. 놀라운 것은 생각보다 일찍부터 이런 고민을 한다는 거다. 요즘 아이들은 예전과 달리 발달단계의 시기가 빨라졌음을 절실하게 느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부모는 그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고 예전의 방식을 그대로 고수한다. 이 때문에 아이들은 부모와의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방치하거나 친구와 어울리면서 잊어버리려고 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이윤조 팀장: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해보면 고민 중 상당수가 진로와 학업 문제다. 부모로부터 자녀는 늘 공부를 강요받는다. 일찍부터 입시문제로 여유가 없는 것도 문제다. 입시에 대한 불안감과 초조함이 커져 부모와의 관계도 원만하지 못한 것이다.

남과 비교하는 말에 좌절 느껴

▶정주현 교사: 아이들과 대화를 해보면 부모의 한 마디에 상처를 많이 받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가장 큰 상처로 남는 것은 비교하는 말이다. 엄친아라는 말이 유행하듯이, 우리 청소년들은 옆집 아이, 형제·자매와 늘 비교당한다. "옆집 아이는 뭐든 잘하는 데, 너는 왜 이러니"라는 식의 비교하는 말을 들을 때마다 아이들은 부모와 대화하기를 꺼린다.

▶이윤조 팀장: 자녀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진 것도 원인이다. 최근 들어 저출산 현상이 보편화되면서 자녀에 대한 높아진 관심이 과도한 욕심으로 흐르는 경우가 많다. 내 자녀를 완벽한 아이로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성적집착증으로 나타나곤 한다. 또래 아이들과 비교해 뛰어나도록 만들려는 욕심이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는 문제를 낳았다.

▶일락: 아이들이 부모와 대화하는 것을 꺼리고 친구들, 가까운 선후배들을 좋아하는 것도 여기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부모나 선생님은 늘 뛰어난 누군가와 비교해 분발하라고 하지만 친구들은 누구와 비교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본인을 받아주기 때문이다. 고민상담을 요청하는 청소년들을 자주 만나는 데 그들의 고민을 오롯이 들어주니 편안함을 느끼더라.

작은 것에 귀 기울이자

▶정주현 교사: 아이들과 대화를 해보면 내 마음을 이해해줄 때 쉽게 감동을 받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이들과 공감대화를 해야 한다. 자녀를 있는 그대로 이해한다는 태도로 다가가야 한다. "태어나줘서 고맙다" "사랑한다"는 인사말을 하거나 그동안 부모가 미숙했던 점이 있으면 이를 인정하는 자세도 필요하다.

▶이윤조 팀장: 아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관심을 가지고 그것에서부터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 "너는 고민이 무엇이니?"와 같이 무거운 주제로 대화를 시작할 것이 아니라 아이의 입장에서 소소한 주제로 편안하게 대해야 한다. 일례로 요즘 아이들은 인터넷에 익숙하기 때문에 부모 역시 인터넷을 시도해보는 노력도 필요하다. 그것이 하나의 기회가 되어 소통할 수 있는 소재로 작용할 것이다.

▶이창호 실장: 자녀를 통제 대상이 아닌 소중한 하나의 인격체로 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아이의 말에 귀 기울여주는 태도를 보일 때 아이가 닫혔던 마음의 문을 조금씩 열 것이다. 부모가 생각하는 방향을 일방통행하려는 양육 태도에서 벗어나 아이의 발달단계를 수용하려고 노력해보자.

▶일락: 대화가 어렵다면 편지로 시작해보는 것도 좋다. 얼굴을 바로 맞대지 않아 어색함이 덜하다. 내 경우 청소년 시기 부모님과 편지를 통해 생각을 주고 받았는데, 진솔함이 묻어난 아버지의 편지를 보면서 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인식전환 필요

▶이창호 실장: 아이의 능력과 재능을 살피지 않고 대학합격이라는 동일한 목표치를 적용하는 것도 안타까운 일이다. 부모 입장에서 욕심과 기대를 내세우기보다는 아이들의 다양한 생각과 욕구를 파악하고 제대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바쁘다는 핑계로 자녀와의 어색한 관계를 방치하기보다는 여행, 공연, 문화생활, 대화 등 함께 할 수 있는 경험을 늘리는 것이 좋다.

▶이윤조 팀장: 행복한 부모-자녀 관계를 만들기 위한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바로 관심이다. 아이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왜 저런 행동을 하는 지 관심을 가져보자.

▶정주현 교사: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서는 연습과 배움이 필요하다. 내 자녀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기술과 방법 등을 배울 수 있는 부모교육 프로그램을 활용해보는 것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