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 하원이 29일 이슬람 여성들의 '부르카(Burqa·전신을 가리는 검은색 전통의상)착용 금지법'을 통과시키면서 유럽에서 부르카 착용금지 조치가 현실화되고 있다. 찬반 논란도 다시 고조될 조짐이다. 유럽 국가 중 부르카 착용을 금지하는 입법에 착수한 나라는 벨기에가 처음이다.

벨기에 하원은 이날 얼굴 전부를 가리는 부르카를 포함, 신원을 완전히 확인할 수 없게 하는 옷과 베일을 공공장소에서 착용하지 못하게 하는 법안을 압도적 찬성률로 통과시켰다. 투표에 참여한 의원 134명 중 반대표를 던진 사람은 한명도 없었고, 단지 2명의 의원만 기권했다. 법안에 따르면 거리와 공원, 운동장, 공중(公衆)이 이용하는 건물 내에선 부르카 착용이 전면 금지된다. 다만 지방자치단체가 특별히 허락할 경우 지역 축제 등에서는 제한적으로 착용이 가능하다. 법을 위반하는 여성은 15~25유로의 벌금을 내거나 7일간의 구류 처분을 받게 된다. 이번 법안은 상원 의결을 거쳐야 시행되는데, 법안 통과가 확실시된다.

벨기에 전체 인구 1000만명 중 이슬람 인구가 약 40만명이다. 이 중 부르카를 착용하는 여성은 수백명에 불과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벨기에의 부르카 착용 금지법 제정은 프랑스 등 다른 나라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의 경우 오는 7월 부르카 착용 금지법을 하원에 상정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프랑스 정부는 '모든 공공장소에서 부르카 착용을 금지하는' 내용의 법안을 5월 19일 각의에서 승인할 방침이다.

30일 프랑스 일간지 르 피가로가 보도한 정부 법안에 따르면, 모든 공공장소에서 부르카 착용이 금지되고 이를 어긴 자에겐 첫 위반 시 벌금 150유로(22만원)를 부과한다. 또 부르카 착용을 강요하는 자에겐 벌금 1만5000유로(2200만원)나 징역형에 처한다.

유럽에서 부르카 착용이 논란이 되는 것은 무슬림 이민자들이 늘어나면서 반(反) 이슬람 정서가 고조되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현재 EU 인구(약 4억5000만명) 중 무슬림 인구는 5000만명에 달한다. 게다가 무슬림 출산율이 백인보다 훨씬 높아 수십년 내에 1억명을 돌파할 것이란 전망도 있다. 무슬림 인구 증가는 유럽 국가들 내에서 '정체성'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으며, 부르카·미너렛(이슬람 사원 첨탑) 등 이슬람 문화에 대한 제한 조치로 이어지고 있다. 스위스에선 작년 말 미너렛 건축 금지 법률을 국민투표에 부쳐 57% 찬성률로 통과시켰다.

무슬림 사회와 인권단체들은 "종교 및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는 행위로, 인종차별 정책이나 다름없다"며 반발하고 있다. 국제 앰네스티(AI)는 30일 성명에서 "부르카 착용 금지는 국제 인권법 체제하에서 벨기에가 준수해야 하는 의무에 반하는 것으로 (벨기에) 상원은 이 법안을 재검토해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EU(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벨기에) 상원에서 통과돼야 법제화가 마무리된다"며 "아직 언급할 계제가 아니다"라고 신중한 입장을 나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