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리우드식 영화에 익숙해진 우리에게 '슬럼독 밀리어네어'라는 영화는 다소 충격이었다. 그러나 생소한 배우의 얼굴과 언어가 담긴 이 제3세계의 영화는 국내 개봉 전에 이미 아카데미와 골든 글로브를 비롯해 권위 있는 국제적 영화상을 휩쓸면서 주목받았다.

플롯은 주인공 자말이 퀴즈쇼에 나가서 정답을 맞히는 과정으로 전개된다. 빈민가 출신에다가 정규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자말이 모두의 예상을 깨고 계속해서 정답을 맞히면서 백만 달러 상금의 주인공이 되려 하자 그는 오히려 의심을 받는다. 경찰에 체포되어 전기고문까지 받게 된다. 자말이 정답을 모두 맞힐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다채롭고 지난했던 경험 덕분이다. 영화에는 측은지심, 형제간의 우애, 사랑 등 다양한 메시지와 더불어 가난을 피하려는 그들의 몸부림이 퀴즈쇼와 오버랩 되어 펼쳐진다. 단순한 퀴즈쇼가 아니라 주인공의 삶에 녹아든 경험을 관찰하는 것이 관람 포인트다. 어린 주인공인 자말과 그의 형 살림, 그들의 사랑을 받는 라티카는 어쩌다 갱 두목 마만에 이끌려 앵벌이도 한다. 그곳에서 마만은 벌이가 두 배로 좋다는 이유로 멀쩡한 아이의 눈을 멀게 하는 만행도 서슴지 않는다. 장애에 대한 동정심 유발이 목적이다. '해운대'에서도 아이를 앵벌이시키는 장면이 나오는데 두 눈이 멀쩡함에도 불구하고 아이의 눈이 먼 것처럼 꾸민다. 이 장면은 영화 흐름상 많은 웃음을 이끌어내는 에피소드로 작용하지만 한편으로는 시력 장애에 대한 동정심 유발이라는 차원에서 쉽게 웃고 넘기기에는 씁쓸한 뒷맛이 남는다.

어떤 목적을 위해 인위적으로 사람의 눈을 멀게 하는 장면은 '슬럼독 밀리어네어'에만 나오는 게 아니다. '서편제'에서도 유봉이 송화에게 약을 먹여 눈을 멀게 만든다. 눈을 멀게 한다고 해서 송화가 명창이 될지는 의문이지만 중요한 에피소드로 차용되었다. 다분히 정서적 배경에 근거로 두고 있어 서양 사람들 눈에도 보편적 지지를 얻을 수 있는가는 알 수 없지만 짠한 연민을 자아내는 데는 충분한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파리넬리'에서 카스트라토로 만들기 위해 거세당하는 파리넬리를 떠올리면 좋은 비교가 될 것이다.

'슬럼독 밀리어네어'에서 마만은 뜨겁게 달군 기름을 숟가락으로 떠서 눈에 부어 인위적으로 아이의 눈을 멀게 만든다. 이렇게 눈에 뜨거운 기름을 붓게 되면 눈의 모든 조직이 녹아내리고 쪼그라드는 '안구로 현상'이 나타난다. 마치 눈이 바람 빠진 축구공 모양처럼 쪼그라들어 최종적으로 실명에 이르게 된다.

일상에서도 눈은 뜨거운 기름이 튀거나, 산성 또는 알칼리성 용액 등 화학약품에 의해 화상을 입는 경우가 많다. 특히 물이나 기름 등 뜨거운 것에 데는 것보다 눈의 속까지 망가뜨릴 수 있는 화학약품에 의한 화상이 더 위험하다. 일반적으로 산성보다는 알칼리성 용액에 의한 피해가 더 크다. 산성인 식초보다 양잿물이 더 무섭다는 말이다.

사실 장애는 선천적인 것에 비해 사고 등에 의한 후천적 장애가 훨씬 많다. 지난 2월 국립재활원 발표에 따르면 선천적 장애는 4.9%밖에 되지 않는 반면 나머지 95% 이상이 질병, 사고 등에 의한 것이었다. 사고가 일어났을 때 초기대응만 잘 해도 장애로까지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의미다.

눈에 기름이나 화학물질이 튀었다면 빠르게 응급처치를 해야 한다. 각막혼탁으로 연결되지 않으려면 인공눈물이나 생리식염수, 이러한 것도 없다면 흐르는 수돗물에라도 눈을 씻고 빨리 안과로 가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 이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가급적 눈을 비비지 말아야 한다는 것. 화상을 입은 상태로 눈을 비비게 되면 각막 상피가 벗겨져 치료와 회복에 큰 지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영화를 보고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것도 소중한 눈 덕분이다. 조금 더 눈 건강에 관심을 기울이자.

< 빛사랑안과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