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강필주 기자]한국은 개최국 자동 출전에 의해 예선 없이 본선에 올랐다.
그러나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뒤 대표팀 감독 선임에 차질을 빚고 있었다. 5회 연속 월드컵 진출은 했으나 그 전까지 성적이 4무 10패에 그치고 있었다. 상대적으로 시드니올림픽 8강, 아시안컵 우승을 차지한 일본이 더 좋은 성적을 내고 있었다.
결국 대한축구협회는 올림픽과 아시안컵에 참가했던 허정무 감독을 경질하고 거스 히딩크를 한국대표팀의 수장직에 올렸다. 히딩크 감독은 프랑스 월드컵 때 0-5라는 대참패를 안긴 당시 네덜란드 사령탑이었다.
2000년 12월 계약한 히딩크 감독은 2001년 홍콩 칼스버그컵부터 본격적인 월드컵 체제로 돌입했다. 하지만 시작은 좋지 않았다. 노르웨이에 2-3으로 패하며 3위에 머물렀다.
2001년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는 프랑스에게 0-5로 패했고 체코 원정 평가전에서 다시 0-5로 대패하면서 '오대영 감독'이라는 비아냥이 쏟아졌다. 히딩크 경질론은 힘을 얻었다.
하지만 대한축구협회의 옹호 속에 히딩크는 외압없이 한국대표팀을 지도, 1998년 월드컵 3위팀 크로아티아와 친선경기에서 1승 1무를 기록하며 기대를 모았다.
▲ 폴란드전-월드컵 사상 첫 승리
한국은 폴란드 포르투갈 미국과 함께 D조에 속했다. 폴란드는 유럽 예선을 가장 먼저 통과한 동유럽 강호였고 포르투갈은 FIFA 랭킹 5위의 세계 축구 강호 중 강호였다. 미국은 그나마 해볼 만하다지만 폴란드와 포르투갈은 객관적인 전력상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히딩크 감독은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해주겠다"고 자신감을 내비쳤고 이는 곧 현실로 드러났다.
한국은 최고 골키퍼 두덱을 보유한 폴란드를 맞아 부산에서 2-0의 승리를 거뒀다. 전반 26분 황선홍이 이을용의 패스를 받아 차분하게 왼발 발리슛으로 골문을 갈랐다.
이어 한국은 후반 8분 유상철의 중거리 쐐기골로 승부를 결정지었다. 결국 한국은 1954년 이후 48년, 월드컵 출전 15경기 만에 값진 첫 승을 거뒀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 미국전-안정환의 '오노 세리머니'
한국은 대구에서 미국을 맞았다. 폴란드라는 큰 고비를 넘은 만큼 상대적으로 낮게 평가된 미국이었기에 내심 2승을 거두고 사상 첫 16강 꿈에 부풀었다. 그러나 미국은 포르투갈을 첫 경기에서 3-2로 꺾어 파란을 일으킨 상태였다.
전반 22분 매티스에게 선제골을 내주고 말았다. 이을용이 페널티킥을 넣지 못해 한국은 흐름을 되찾지 못했다. 하지만 후반 33분 안정환의 극적인 동점골이 터지며 1-1 무승부로 한숨을 돌렸다.
안정환은 골을 넣은 뒤 2002년 동계올림픽에서 미국의 아폴로 안톤 오노에게 억울하게 금메달을 빼앗긴 김동성을 위로하는 의미의 '오노 세리머니'를 펼쳐 화제가 되기도 했다.
▲ 포르투갈전-역사적인 사건이 된 박지성의 골
1승 1무. 하지만 16강은 확정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한국과 미국이 1승 1무, 포르투갈이 1승 1패를 기록하고 있어 포르투갈전에서 최소한 비겨야 했다.
한국은 루이스 피구를 앞세운 우승후보 포르투갈을 상대로 체력적인 우위를 보였다. 이는 곧 포르투갈의 주앙 핀투와 베투가 경고 누적으로 퇴장당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11-9라는 숫적 우위까지 점한 한국은 후반 25분 박지성의 환상적인 골이 터지며 16강행을 확정지었다.
비겨도 16강 진출이 가능했던 포르투갈은 수비 위주의 플레이를 펼치다 탈락의 고배를 들이켰다. 경기가 열린 인천 뿐 아니라 대한민국 전역이 축제의 장이 됐다.
2승 1무의 성적을 거둔 한국은 승점 7로 당당히 조 1위를 차지했다. 히딩크 감독은 "아직도 배가 고프다"며 각오를 다졌다.
▲이탈리아전(16강전)-극적 동점 그리고 안정환의 골든골
한국은 대전으로 이탈리아를 불러들였다. 견고한 수비를 바탕으로 무서운 공격력을 보유한 이탈리아는 전반 18분 비에리의 선제골로 앞서갔다.
이후 한국의 공격력이 번번이 이탈리아 빗장수비에 막히자 히딩크 감독은 차두리 등 공격수만 5명을 투입하는 도박을 감행했다. 결국 후반 43분 설기현의 왼발슛이 이탈리아 골망을 흔들었다.
승부는 연장전으로 돌입했고 연장 전반 13분 프란체스코 토티가 퇴장당하면서 수적 우세를 안았다. 토티는 페널티박스 안에서 넘어지며 페널티킥을 유도했으나 모레노 심판이 이를 시뮬레이션 액션으로 판정, 퇴장을 명령한 것이다.
한국은 연장 후반 12분 이영표의 크로스를 안정환이 절묘한 헤딩슛으로 성공시키는 골든골로 8강행을 확정지었다. 안정환은 이 골로 경기 초반 얻은 페널티킥 실축을 완전히 만회했다. 1966년 북한 이후 아시아팀으로는 첫 8강행을 이뤄냈다.
▲ 스페인전(8강전)-승부차기서 보여준 이운재의 선방
광주에서 열렸다. 한국은 연장 혈전을 치른 지 나흘만의 경기였다. 스페인 역시 아일랜드와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을 펼쳤으나 한국보다 이틀이나 더 휴식을 취했다. 체력적인 면에서는 확실히 스페인이 우위였다.
하지만 한국은 히딩크의 파워 프로그램으로 다져진 체력과 함께 무서운 정신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서로 결정적인 몇 차례 찬스를 놓치면서 0-0으로 마쳐 승부차기로 돌입했다.
한국의 선축. 한국은 황선홍 박지성 설기현이 잇달아 골을 성공시켰다. 스페인 역시 이에로 바라야 사비가 실수 없이 골을 기록했다. 한국의 네 번째 키커 안정환도 침착하게 골을 넣어 이탈리아전 페널티킥 실축의 부담감을 없앴다.
다음 스페인 네 번째 키커는 호아킨. 골키퍼 이운재는 호아킨이 속이려는 동작을 취했지만 그대로 공에 집중, 침착하게 공을 막아냈다. 결국 마지막 키커인 주장 홍명보가 골을 성공시켜 4강행을 확정지었다. 아시아팀이 4강에 든 것은 최초였다. 또 한국의 세계 4강은 지난 1983년 멕시코 세계청소년대회 이후 19년 만에 처음이었다.
▲ 독일전(4강전)-발락과 칸에 막힌 결승행
서울에서 열린 독일과 4강전은 더 이상 두려움이 없었다. 이미 결승전이 열리는 일본 요코하마행 비행기표에 대한 예약이 폭주할 정도였다.
하지만 한국은 상대적인 체력 열세를 극복하지 못해 0-1로 무릎을 꿇었다.
한국은 특유의 정신력과 조직력으로 독일 문전을 위협했다. 그러나 그 때마다 독일의 골키퍼 올리버 칸의 손에 막혀 아쉬움을 남겨야 했다. 결국 후반 30분 한 번의 실수를 놓치지 않은 미하엘 발락이 결승골을 터뜨렸다.
노이빌레의 크로스를 받은 발락이 문전 쇄도하면서 슛을 때렸지만 이운재가 이를 막아냈다. 하지만 다시 발락이 차분하게 밀어넣었다. 경기는 그대로 끝났고 아쉬움을 남긴 채 3~4위전에 나서야 했다.
▲ 터키전(3~4위전)-순식간에 내준 첫 골에 당황
미국전이 있었던 대구에서 열린 3~4위전. 한국은 1954년 스위스 월드컵에서 0-7의 굴욕을 안겨준 터키를 맞아 설욕 의지를 강하게 내비쳤다.
하지만 출발부터 어이없는 골을 허용하면서 어긋났다. 킥오프를 하자마자 10여 초 만에 하칸 슈쿠르에게 선제골을 내주고 말았다. 기록상으로는 1분으로 나왔지만 선수들도 관중들도 어이없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8분 후인 전반 9분에 이을용의 골이 터져 균형을 이뤘다. 다시 팀을 재정비할 수 있는 분위기로 돌아서는 듯했다. 하지만 다시 4분 후인 전반 13분에 일한 만시스에게 골을 내준 뒤 전반 32분 다시 만시스에게 추가골을 내주고 말았다.
전반을 1-3으로 뒤진 한국은 후반 인저리 타임에 송종국이 만회골을 넣어 추격에 나섰다. 하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그동안 단 1승도 거두지 못했던 한국은 이번 월드컵에서 4위까지 오르며 세계를 놀라게 만들었다. 이후 한국선수들의 해외 진출이 활발해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 2002년 한일 월드컵 출전 선수
▲ GK=이운재 김병지 최은성
▲ DF=홍명보 김태영 이민성 최진철 송종국 이영표 최성용
▲ MF=윤정환 유상철 이을용 박지성 김남일 현영민 최태욱
▲ FW=황선홍 안정환 최용수 차두리 설기현 이천수
letmeout@osen.co.kr
황선홍이 폴란드전서 선제골을 넣고 환호하며 달려가는 모습, 안정환의 이탈리아전 골든골 장면, 히딩크 감독이 벤치에서 박수 치는 모습, 준결승서 독일에 패한 뒤 관중석에 인사하는 태극전사들(위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