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강필주 기자]지금은 아시아 맹주로 완전하게 자리잡은 대한민국 축구는 지난 1986년 멕시코 대회부터 2010년 남아공 대회까지 7회 연속 월드컵 진출이라는 쾌거를 이뤘다. 이는 아시아 최다 기록. 사우디아라비아와 일본이 4회 연속을 기록했을 뿐이다.
그러나 첫 경험은 참담했다. 아시아 예선서 일본을 1승 1무로 따돌리고 1954년 스위스 대회에 처녀 출전한 김용식 감독의 한국은 2경기서 모두 대패, 2차 토너먼트 진출에 실패했다.
▲ '적지' 일본서만 치른 예선전
한국은 일본과 홈 앤드 어웨이 방식으로 예선을 치르지 못했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36년 동안 우리 국토를 강점, 국교 정상화가 되지 않은 일본대표팀을 한국 땅에 발들이게 할 수 없다고 버텼다. 결국 모든 경기는 일본 도쿄에서 치러질 수 밖에 없었다. 당시 대표팀을 이끌었던 이유형 감독은 일본의 방한을 꺼린 이 대통령에게 "패하면 귀국하지 않고 현해탄에 몸을 던지겠다"고 다짐까지 했다는 일화가 전해져 온다.
결국 한국은 1차전에서 최정민(2골)을 비롯해 성낙운 정남식 최광석의 릴레이 골로 5-1 완승을 킵榴�. 먼저 선취점을 잃었지만 맹공세로 대역전극을 펼쳤다. 일주일 후 열린 2차전에서는 2-2 무승부를 기록, 1승 1무로 스위스행 티켓을 획득했다. 이유형 감독은 대표팀 지휘봉을 김용식 감독에게 넘기고 은퇴했다.
▲ 험난한 여정, 대패로 막내린 첫 경험
스위스 월드컵 출전 팀은 모두 4개 대륙 16개팀. 아시아 지역의 유일한 출전팀이었던 한국은 개막일이었던 6월 16일 밤에야 겨우 현지에 도착했다. 선수단 전원이 함께 탈 비행기표를 구하기 힘들어 1진과 2진이 따로 출발, 일주일이나 걸렸다.
한국은 그룹 2조에 헝가리, 서독, 터키와 함께 속해 있었다. 그러나 시차적응은 커녕 여독도 풀리지 않은 상태에서 헝가리, 터키와 맞붙어야 했다.
17일 취리히 하르트룸 스타디움에서 열린 헝가리전에서는 0-9로 대패했다. 전반 12분 만에 당시 세계 최고의 골잡이였던 페렝크 푸스카스에게 첫 골을 내준 한국은 전반에만 4골을 내준 뒤 후반 5골을 더 허용했다. 첫 TV 중계가 실시됐던 월드컵이었기에 패배의 충격은 더했다.
대표팀은 사흘 후 20일 제네바에서 만난 터키전서 선전을 다짐했다. 그러나 역부족이었다. 경기 시작 10분만에 수아트 마마트에게 첫 골을 내준 한국은 전반에만 4골을 내줬고 후반 3골을 추가로 잃었다.
같은 조의 서독과는 경기조차 하지 못했다. 1차 리그 조 편성에서 시드를 받은 2개팀을 각 조에 배정했고 각 조 시드국들은 서로 대전하지 않고 시드받지 못한 2개 팀이 시드받은 팀에 도전하는 방식이라 탈락이 확정되면 나머지 경기는 치르지 않게 돼 있었다.
서독은 터키를 7-2로 꺾고 헝가리와 함께 8강에 합류했다. 결국 사상 첫 월드컵 출전의 쾌거를 이룬 대표팀은 2경기서 무득점 16실점의 참담한 성적표로 귀국길에 올라야 했다.
베른에서 열린 결승전에서는 서독과 헝가리가 맞붙었고 서독이 헝가리에 3-2로 승리, 첫 우승컵을 차지했다. 결국 한국대표팀의 월드컵 역사는 소위 말하는 '죽음의 조'에서 출발한 셈이다.
◆ 1954년 월드컵 출전선수
▲ GK = 홍덕영 함흥철
▲ FB = 박규정 이종갑 박재승
▲ HB = 이상의 김지성 강창기 한창화 민병대 주영광
▲ FW = 이수남 박일갑 정남식 최정민 성낙운 정국진 최영근 이기주 우상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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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스위스 월드컵에 출전한 대표팀, 대회 참가 메달, 이승만 전 대통령과 스위스 월드컵 대표팀, 고 주영광 씨가 대회에 참가할 때 사용한 가방과 장비들(위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