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 문발IC에서 나와 파주시 교하읍 방향 옛 56번 국도를 타고 5분쯤 달리면 오른편으로 이국적인 유럽식 건물들이 보인다. 이곳은 지난해 5월 문을 연 아웃렛 쇼핑몰인 '파비뇽'이다. 프랑스의 유서 깊은 도시인 아비뇽과 패션을 합친 이름처럼 2만1300㎡(약 6400평)의 부지에 프랑스식 건물 10개동 244개 점포가 마을을 이루고 있다.

하지만 새로운 디자인의 테마 쇼핑몰을 내세우며 문을 연 파비뇽은 1년도 채 안 돼 '유령마을'이 됐다. 개장 당시 60여개 브랜드가 들어왔지만 지금은 모두 이곳을 떠났다. 시행사인 오쉘윈이 자금난으로 전기세를 제때 내지 못하면서 쇼핑몰 전체의 전기가 끊겼기 때문이다. 오쉘윈은 지난해 12월부터 세달 동안 전기세 6600여만원을 내지 못했다. 1월부터 전기가 끊기는 일이 계속돼 일부 상인들이 요금을 대신 내며 버텼지만 3월 이후에는 전기는 물론 전화·인터넷 등이 모두 불통됐다. 지난 11일 방문한 파비뇽에는 텅빈 가게 위로 간판 40여개만 남아 있었다. 'COMING SOON'(곧 개장)이라는 플래카드가 붙은 쇼윈도 안에는 벌거벗은 마네킹과 텅빈 옷장이 놓여 있었다.

오쉘윈의 자금난은 지난해 세계적인 금융위기 등으로 분양신청자들이 줄줄이 계약을 해지하면서 시작됐다. 지난해 2월 준공 당시 분양을 신청했던 70여명 중 30여명이 계약을 해지했다. 오쉘윈측은 "2006년부터 쇼핑몰 신축을 준비했지만 1년 넘게 착공이 지연되면서 분양주들의 불안이 더 커졌다"며 "개장 이후에는 신세계첼시와 롯데아웃렛이 근처에 들어서기로 해 입점했던 브랜드마저 빠져나갔다"고 말했다. 오쉘윈이 현재 평택에 짓고 있는 아웃렛도 공정률 50%대에 멈춰 있다.

시행사가 자금난에 빠져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자 분양주들이 직접 비상대책회의를 소집하고 나섰다. 분양주 대표 10명은 13일 고양시 백석동에 있는 시행사 사무실에 모여 3번째 비상대책회의를 열고 쇼핑몰 정상화 방법을 의논했다. 대표인 장재훈(50)씨는 "상가가 텅 비어 분양할 때 받은 은행 대출금의 이자를 낼 방법이 없다"며 "일부 분양주들은 이곳에 들어와서 신용불량자가 됐다"고 말했다. 장씨는 "고양시 덕이동 상인연합회와 함께 신세계첼시와 롯데아웃렛의 입점을 저지하는 한편 업종변경 등 자구책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입점한 매장들이 모두 빠져나간 파주시 교하읍 파비뇽 아웃렛의 모습. 한 의류매장에서 미처 가져가지 못한 간판이 바닥에 방치 돼 있다.

한편 30여명에 이르는 임차인들은 보증금조차 받지 못한 채 일부만 개별적으로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보증금 6000만원(월세 250만원)을 들여 이곳에 커피점을 낸 안모(32)씨는 지난 3월 가게 문을 닫은 뒤 시행사 등을 상대로 보증금반환청구소송을 냈다. 서울에서 5년 동안 학원을 운영하면서 모은 돈으로 커피점을 시작했지만 안씨는 인테리어 비용 5000만원 등 1억3000만원을 잃었다. 밀린 은행 대출금만도 1억원이 넘는다. 그는 "인테리어 비용이나 영업손실에 대한 손해배상은 바라지도 않는다"며 "보증금만이라도 건져서 빨리 이곳을 떠나고 싶은 마음뿐"이라고 말했다.

파비뇽에서 스포츠 의류를 팔던 배모(45)씨는 지난 1월 일찌감치 근처에 있는 다른 쇼핑몰로 가게를 옮겼다. 배씨는 "전기가 끊겨 10일 동안 장사를 못하니까 본사에서 바로 물건을 빼라는 연락이 왔었다"며 "그것만은 막아보려고 인테리어비 4000만원을 들인 가게를 남겨 둔 채 임시로 가게를 냈다"고 말했다. 원래 매장에 '단전(斷電)으로 잠시 가게를 이전한다'는 안내문을 붙이고 단골들에게 모두 전화를 돌렸지만 손님이 10분의 1로 줄었다. 배씨는 "작년에 경기는 안 좋았지만 고양시에서 찾아 오는 손님들이 꽤 있었다"며 "쇼핑몰이 빨리 정상화돼 원래 매장에서 옷을 팔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