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생존 승조원들이 7일 경기도 성남 국군수도병원에서 열린 합동조사결과 발표에 참석해 침몰당시 상황을 증언했다.

윤한두 국군수도병원장은 생존자들의 건강상태와 관련 "일부 환자는 불안과 불면증, 죄책감, 악몽, 기억 문제 등 심리적인 압박을 갖고있다"고 말했다. 윤 병원장은 "대퇴부 골절, 인대파열로 2명이 수술을 했고, 골절환자도 4명 있었다"며 "생존자들은 외과 치료와 정신적 충격에 대한 치료를 받고 있다"고 전했다. 침몰로 인한 정신적 후유증은 고위험군 14명, 중위험군 17명, 후유증이 낮은 저위험군은 21명으로 조사됐다.

다음은 최원일 함장을 비롯한 천안함 승조원들의 일문일답.

-사고발생 보름이 지났다. 함장은 생존자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는가.
(최 함장) "아직도 실종 장병들이 옆에 있는 것 같다. 제게 복귀신고 하는 날을 기다리고 있다."

-침몰시각에 논란을 빚고 있다. 몇 시쯤에 사건이 발생했는지 당시 상황은.
(대위 박연수) "제가 마지막에 눈으로 함교 당직사관 모니터를 확인했을 때 21시24분이었다. 정확성은 판단할수 없지만 제가 눈으로 본 시간은 그렇다."

-사고 직전에 어떤 상황이었나?
(대위 박연수) "함교 당직사관인 저는 사고 직전까지 정상 근무했다. 문제가 있었으면 정상 보고됐을 것이다. 따로 보고가 없었고 상황이라고 할만한 내용이 없었다. 상황이란 용어 자체도 잘못된것 같다. 특별한 상황 없었다. "

-소나(수중음파탐지기)에 이상징후 포착된 것이 있나.
(하사 홍승현) "특별한 신호가 없었고 당직자는 정상 근무 중이었다."

-천암함이 사고해역에서 16번 정도 임무를 수행했다는데 어떤 임무인가.
(최 함장) "약 20개월을 근무해 그 구역은 누구보다 자신있다. 16회 정도 경계근무를 했다. 주요 임무는 한마디로 도발대비태세 유지였다."

-사고 순간에 폭발음 있었나? 이후 어떤 상황이 벌어졌나?
(상사 오성탁) "사고 순간 지하2층에 있었다. 격실에서 쾅하는 소리와 함께 공중에 붕 떴다. 정전이 되면서 컴퓨터가 제 얼굴을 쳤다.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보니 암흑세계였다. 우측 출입문 손잡이는 항상 잡고 다니기 때문에 위치를 잘 알고있다. 잡고 나가려고 했는데 잡히지 않았다. 출입문이 바닥에 있었다. 쾅하는 소리와 함께 배가 90도 완전히 기운 것이다. 귀가 아플 정도로 소리가 아주 컸다. 문 주위에 컴퓨터 책상 등이 무너져 문이 안 열렸다. 살겠다는 일념 하나로 손에 잡히는대로 기물을 치워서 문 열고 15분만에 나왔다."

-당시 쿵 소리의 느낌이 뭐였는지 판단되냐?
(조타 담당) "외부에 의한 충격이란 생각이다. 자세한 건 모르겠다."

-화약냄새나 여타 폭발징후라고 느꼈던 것이 있나?
(상사 오성탁) "제가 탄약을 담당하는 병기장이어서 잘 아는데 만약 화약이 있다 하면 배에 불나고 화약냄새가 진동한다. 화약냄새는 전혀 나지 않았다."

-후타실에 5명이 있었다는데, 왜?
(상사 오성탁) "저는 운동을 좋아해 그 시간대면 항상 후타실에 가 있다. 운동 좋아해서 사고발생한 시각 1시간 반 전쯤에 매일 운동을 했다. 그 날은 업무보고 때문에 안 갔다. 항상 운동하며 봐왔던 동료들이다. 그래서 더 안타깝다."

-침몰 직전 휴대폰 통화한 장병은 누구인가? 급하게 전화를 끊을 상황이 있었나?
(전탐실 허순행 상사) " 21시14분에서 18분까지 전탐실 계단에서 통화했다. 집사람, 딸과 통화했다. 개인적인 내용이다. 집사람이 현재 임신 중이라 관련된 통화를 했고, 딸에게는 엄마가 많이 힘드니까 도와 드리라고 말했다."

(이채권 대위) "당시 제가 행정업무로 기관장실에 있었다. 특별한 상황 있었으면 고속추진 위한 기관작업을 위해 기관조종실에 있었어야 했다. 일정시간 이전까지도 상황이 없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갑판에 있던 사람은 물기둥을 봤나?
(병사) "당시 함교 우현 견시를 맡고있었다. 함교 밖에 있는 우현은 외부를 관찰하는 역할이다. 물기둥 같은 특별한 점은 없었다. 쾅 소리와 심한 진동이 있었다."

“야간에는 등화관제도 있지만 대원들이 외부로 나갔을 때 실족 등을 당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방지하기 위해 전부 문을 폐쇄한다. 당시 외부에 나온 사람은 좌·우현에 견시 2명뿐이었다. 이들도 360도를 모두 보는 것이 아니라 항해하는 방향으로 전방을 주시하기 때문에 폭발음이나 물기둥이 뒤에서 발생했다면 견시가 확인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천안함 내부적으로 보수측면에서 문제가 제기됐나?
(대위 이채권) "물이 샌다는 얘기는 함정내부의 온도차때문이다. 파이프에 맺힌 응결수를 물이 새는 것으로 오해했다. 함정 내에서 외부에서 물이 스며들거나 하는 상황은 없다. 원하면 서면으로도 작성해줄 수 있다."

-마지막 안전점검 일자와 결과는?
(대위 이채권) "일자는 기억은 못한다. 부임한지 50일 정도여서 이전 상황에 대해 숙지 못했다. 제 방에 있을 인수인계 자료를 확인해야 한다. 하지만 출항 결정 2~3일 전부터 장비작동 등을 확인하기 때문에 선체 자체노후 등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고 후 구조선이 올 때까지 1시간동안 어떻게 뭐하고 있었나?
(중위 박세준) "최초 함교에서 좌현으로 통로를 나왔다. 구조 올 때까지 추워하거나 심리적 불안정해 하는 장병들을 안정시키고 환자들이 먼저 구조될 수 있도록 인원관리를 했다."

(소령 김덕원, 부함장) "갑판에 올라오니 함미쪽이 안보였고 환자 및 대원들이 갑판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함장실 문이 잠겨있어서 풀기위해 노력했다. 함장이 올라와서 인원파악을 지시했다. 침착하게 여러 대원들이 그 자리에 구조세력 오는 것을 기다렸다. 작전병과 제가 고속정이 계류 가능한 곳을 파악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자체보관 하던 구명정 2개를 내렸다. 이후 해경 립을 이용해 이동할 수 있도록 했다."

(상사 김정운) "정전됐을때 함미로 가서 발전기를 기동해서 함정의 전원을 복구하려고 했다. 함미로 가려고 바라봤을때 벌써 절단되고 없었다. 바다에 달빛이 반짝여 함미가 없는 것을 알고는 그 이후 함교로 올라가서 함장 지시에 따랐다. 고속정이 도착했을 때 적일지 모르니까 모두 머리를 숙이고 있으라고 했다."

(함장) "휴대폰으로 함대사와 지속적 교신을 유지했다. 고속정, 립 등에 지원요청했다. 구조된 인원, 생존인원을 보고했다. 생존된 인원 중에 부상 심하지 않은 인원은 함내부에 들어가 생존인원을 다시 확인하고 구조했다."

-장병들 핸드폰을 회수한 사실이 있나"
(최 함장) "있다. 구조가 해경, 고속정 등 여러군데에서 이뤄졌고 골절, 피 흘리는 사람 등이 있는 상황이어서 누가 있다 없다 확인하면 처음부터 혼란갈 것이라고 생각해서 그랬다."

-함장이 사고 발생시각을 9시25분에서 22분으로 번복한 이유는? 스스로 생각하는 사고원인은?
(최 함장) "당시 책상에 앉아서 KNTDS(전술지휘체계) 자료를 검색하고 있었다. 컴퓨터 모니터 우측 화면에 23분인 것을 확인했다. 항해 중에는 매시간 두번 기상을 보고한다. 정시와 30분이다. 보통 5~6분 전에 기상을 보고하기 때문에 25분이라고 생각했다. 시간을 번복했다고 하는데 내가 발표한 내용은 아니다. 저는 사고 다음날 바로 현장에 가서 선체나 실종자 상황을 지휘, 보좌하고 있었다. 나중에 정황을 보니 지질연구소 자료와 함에서 위성송신이 끊긴 시간 등 객관적 자료를 보고 그렇다고 한 것이다. 컴퓨터 화면 시간은 컴퓨터상 오차라고 생각했다. 사고원인은 나도 궁금하다. 정확하고 과학적인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

-함미 쪽의 체육시설을 갈 때 어떤 복장을 하고 가는가?
(병장 전준영) "보통 운동할때는 속옷 내의와 반바지를 입고 한다. 운동을 했다면 복장이 그랬을 것이다. 나도 침실에서 쉬고 있었는데 특별한 상황이었으면 근무복을 입었을 것이다. 당시 속옷을 입고 침실에서 쉬던 상태였다."

-9시16분에 원인미상의 소음을 청취한 장병이 있었나?
(상사 허순행) "9시18분까지 가족과 통화를 했다. 소음이 들렸으면 전화를 끊고 바로 상황파악을 했을 것이다. 함 안쪽에서는 일체의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일병 황보상준) "함교 외부 좌현에 근무하고 있었는데 당시 아무런 소리도 듣지 못했다."

-9시16분 큰 소음이 발생했다면 천안함으로도 보고됐나?
(중위 박세준) "당직근무 서는 동안은 유무선 통신망으로 보고가 되는데, 어떤 통신망으로도 그런 보고가 없었다."

-최초 보고한 시각과 보고내용은?
(최 함장) "함장실에 갇힌 상태에서 출입문 쪽을 보면서 저를 구출하는 통신장에게 '상황보고 먼저 해'라고 지시했다. 올라와보니 포술장 중위가 '상황보고 했습니다'라고 보고했다. 직접 통신기를 잡고 있으면 구조 지휘가 어려워지기 때문에 옆에 정다운 중위와 통신장을 위치시켰다. 제가 지시한 내용과 구조상황을 바로 방송형식으로 계속 보고하라고 했다. 장교들끼리 '뭐에 맞은거 같다' '충격이 너무 컸다'고 얘기했다."

(중위 김광보) "최초 올라갔을때 휴대폰으로 함대 지통실에 전화했다. 너무 정신없어서 지통실 전화번호로 한 게 아니고 군 부대 교환대 통해서였다. 너무 정신없어서 어떤 말을 했는지 기억 잘 안난다. 상황장교가 전화를 받았다. 처한 위치나 상황을 두서없이 말해서 기억이 없는 상태다. 급하게 말하면서 구조요청, 현재 위치, 눈에 보이는 것들을 이야기했다."

-'꽝 꽝' 소리가 두 번 났다는데, 소리의 간격이나 차이가 있었나?
(상사 김수길) "꽝꽝 소리를 두 번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안 자고 있었기 때문이다. 꽝 소리와 동시에 침대를 빠져나왔다. 3~5초 내에 쿵 소리 다시 났다. 정신없어서 처음 소리와 차이는 특별하게 못 느꼈다. 처음 쿵 소리가 나서 어디 부딪힌줄 알고 전탐실로 향했다. 두번째 쾅 소리는 폭음같이 났고, 천정에서 전등 등 물품이 떨어지는 소리와 합해서 들렸다."

-소리가 나고 몸이 붕 떴다는 진술이 있는데, 이 둘의 선후관계는?
(상사 오성탁) "천안함의 지하2층에 위치하고 있었다. 아마 내가 함 내에서 수중 가장 깊은 곳에 있었을 거다. 쾅 소리와 동시에 몸이 붕 떴고, 소리와 동시에 함정이 90도 기울었다."

-화약냄새 안 났다는데, 그러면 암초 가능성은 어떻게 보나?
(상사 김병남) "암초에 걸리게 되면 기본적으로 찢어지는 소리가 난다. 사주(뻘)에 걸리면 배가 출렁거린다. 그런 상황 때문에 외부 충격이 아니었나 하고 생각된다."

-최초 보고할때 사고원인에 대해 보고하지 않았나? 함대에서 묻지 않았나?
(최 함장) "급박한 구조상황이었다. 가장 다급한 것은 구조요청이었고, 사고원인은 차후 상황이었다. 해경정에 와서 22시32분에 통화할때 '충격을 받은 거 같습니다'라고 보고했다. 다급한 구조요청과 고속정 요청, 환자상태, 구급차 요청 등을 주로 했다."

-어뢰와 기뢰에 의한 사고 가능성을 어떻게 보나?

(최 함장) "정말 답답한 심정이다. 세상이 생명과 같은 천안함을 제발 있는 그대로 이해해줬으면 감사하겠다. 아직도 옆에있는 듯 장병들이 가슴에 묻혀있다. 누구보다 슬퍼할 실종자 가족들 생각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