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의 미래는 아프리칸의 손으로.’가난으로 공부를 중단한 윌리엄 캄쾀바는 폐품을 끌어모아 풍력발전기를 만들었다.

2001년 아프리카 빈국 말라위에 대기근이 덮쳤다. 이 나라 북쪽 마시탈라 마을에 살던 열네 살 난 중학생 윌리엄 캄쾀바는 학교를 자퇴해야 했다. 담배 농사가 망하면서 아버지는 20명에 이르는 가족 부양이 불가능했다.

학비는 일년에 80달러였다. 교실 창밖을 기웃거리며 '도강(盜講)'을 하던 캄쾀바는 결국 교사들에게 들켜서 쫓겨났다. 캄쾀바 눈앞에선 늘 시뻘건 황토가 바람에 날렸다. 그 끝없는 바람이 캄쾀바의 운명을 바꿨다.

외곽에 있는 고원지대를 제외하고 말라위는 사방이 탁 트인 벌판이다. 자원이라곤 아무것도 없지만 바람만큼은 많았다. 벌판 위로는 늘 거센 바람이 불었다. 60가구가 사는 마을에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해가 지면 암흑으로 변해 책을 읽을 수도 라디오도 들을 수 없었다. "전기 바람(Electric Wind)을 잡을 수 있다면"이라고 캄쾀바는 생각했다. 밤에 책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중학교 중퇴생의 독서욕은 엉뚱하게 발전해갔다.

그가 전기 바람이라고 부른 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풍력발전기다. 캄쾀바는 학교 다니던 때 마을 도서관에서 읽은 영문 서적이 기억났다. 제목은 'Using Energy(동력 이용하기)'였다.

미국 초등학교 5학년 수준의 이 책 표지에 풍차 사진이 있었다. 해를 넘겨 열다섯 살이 된 소년은 도서관으로 가서 그 책을 빌렸다. 영어사전을 뒤져가며 책을 읽었지만 풍차 설계 방법, 전력 생산 방법 같은 내용은 일절 없었다.

그가 의지한 것은 오직 하늘 높이 서 있는 풍차 그림 하나뿐. 캄쾀바는 "풍차 사진이 있다는 것은 풍차가 진짜로 있다는 뜻이고, 나도 풍차를 만들 수 있다는 뜻이라고 믿었다"고 했다.

아버지의 고장난 자전거에서 떼낸 바퀴와 체인과 발전기, 어머니가 빨랫줄로 쓰던 전선, 그리고 녹슨 폐 트랙터에서 떼낸 냉각팬을 얼키설키 이어붙여 풍차를 만들고 나무를 주워 못질을 해 풍차 지지대를 만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간단한 일이지만 그때는 두 달 걸렸다. "마을 사람들은 내가 미쳤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그 두 달째 되던 날 풍차에 연결된 라디오에서 음악이 흘러나왔다. 어른들은 캄쾀바에게 손가락질해댄 자신들을 부끄러워했다.

이제 풍차 사진은 필요없었다. 빌린 책을 반납하러 도서관에 들르자 소년에게 도서관 사서가 물었다. "그래, 이 책을 보고 진짜로 풍차를 만든 거니?" 그렇다고 대답하자 사서는 "내일 내 눈으로 보고 싶다"고 말했다.

중학교를 중퇴한 소년이 발전기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화제가 됐다. 마을 사람들 도움을 받으며 캄쾀바는 두 번째 풍차를 만들었다. 첫 번째 풍차로 전깃불을 밝히고 두 번째 풍차로는 우물물을 퍼올리고 휴대전화를 충전했다.

며칠에 한 번씩 물을 대던 옥수수밭과 담배밭에 매일 물을 줄 수 있게 되었다. 멀리 물을 길러 가는 대신에 사람들은 원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 땅속 깊은 곳까지 우물을 파서, 맑은 물을 마실 수 있게 되었다.

물 긷고 땔감 주우러 다니던 아이들은 과학을 공부하게 되었다. 삶이 전격적으로 바뀐 것이다. 2006년 또 다시 닥친 가뭄으로 마을 사람들이 풍차가 비구름을 쫓아버렸다고 파괴 운동을 벌였지만 정부의 식량 배급으로 무마됐다.

오히려 이 소동이 더 큰 관심을 불러왔다. 교육당국에서 캄쾀바를 찾아온 것이다. 여전히 중퇴생이었던 캄쾀바를 본 관료는 정부 장학금으로 아이를 학교에 재입학시키고 기자들을 마을로 초청했다.

말라위 전 국민이 캄쾀바를 알게 되었다. 2006년 11월이다. 블로거들이 퍼나른 스토리를 TED(Technology, Education & Design)라는 국제NGO 아프리카 지국장이 읽었다. 2007년 캄쾀바는 탄자니아에서 열린 TED 국제회의에 초대돼 연설을 했다.

연설은 이러했다. "…아프리카의 가장 큰 문제는 전기와 물이다. 하지만 아프리카는 아프리카인의 손으로(African Solutions to African Problems)…."

그 해에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이 커버스토리로 캄쾀바를 서방세계에 소개했고, 난생 처음 캄쾀바는 비행기를 타고 미국 여행을 했다. 그가 말했다. "나는 자전거로 풍차를 만들었는데, 미국에는 어마어마하게 큰 풍력발전기가 끝없이 있었다. 전기가 없으면 인터넷도 사용할 수 없고, 그리되면 말라위 사람들은 기술 습득이 불가능하다. 훗날 나도 제대로 된 풍력발전소를 만들고 말겠다."

캄쾀바가 태어나고 자라난 마시탈라 마을은 칸숭구지역에서 다시 동북쪽 말라위 호숫가로 한참을 들어가야 나왔다. 지난달 말 마을에서는 지금까지 그가 만든 풍차 다섯 대 옆에 태양광 집광기가 새로 설치됐다.

그가 중퇴해야 했던 낡은 학교는 그가 불씨가 된 자립운동의 결실로 리노베이션이 한창이었다. 이제 스물세 살 청년이 된 중학교 중퇴생은 마을에 없었다. 그는 TED의 지원을 받아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있는 범아프리카 지도자양성코스인 아프리카지도자학교(Africa Leadership Academy)에 다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