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영 국방부 장관은 지난 29일 국회 국방위 전체회의에서 6·25 전쟁 당시 북한이 서해에 설치한 기뢰 3000여개에 대해 언급하며 "이러한 기뢰가 바다로 흘러내려왔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60년 전 기뢰가 천안함 침몰의 원인일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국책연구소의 A 연구원은 "60년 전 설치한 기뢰가 작동했다는 것도 의문스럽지만 하필이면 천안함이 지나가는 기막힌 타이밍에 충돌했다는 건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들다"며 "지난 60년간 사고 해역을 지나간 무수한 어선들은 운이 좋았다는 얘기밖에 더 되느냐"고 했다.
6·25 때 기뢰가 천안함 침몰 원인이라는 가설은 "배가 50㎝ 붕 떴다" "화약 냄새는 안 났다"는 천안함 생존 장병들의 증언과도 배치된다. 이 증언들은 기뢰가 터졌다면 함정과 직접 부딪친 게 아니라 함정과 일정 거리를 둔 채 수중 폭발했음을 뒷받침한다. 그러나 6·25 때 북한이 설치한 기뢰는 모두 함정에 부딪쳐야 폭발하는 접촉기뢰로 알려져 있다.
한국국방연구원의 박창권 박사는 "물론 60년 전 기뢰가 작동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면서도 "그러나 해수는 부식력이 매우 강해 웬만한 기계장치는 일정 시간이 지나면 기능을 상실하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6·25 기뢰설'이 나오는 것에 대해 한국국방연구원의 백승주 박사는 "1200t짜리 강철 덩어리를 두 동강 낼 만한 파괴력을 가진 무기체계는 기뢰밖에 없다는 판단 때문인 것 같다"고 했다. 그러나 "(6·25 기뢰설은) 전혀 과학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한편 장수만 국방차관과 김중련 합참차장 등은 30일 국회에서 김형오 국회의장에게 비공개 보고를 하는 자리에서 "1970년대 북한 침입에 대비해 (우리 군이) 설치한 폭뢰가 남아있을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박창권 박사는 "대잠(對潛) 무기인 폭뢰는 함미에서 떨어뜨릴 때 일정 수심에서 터지도록 설정을 하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터져야 정상"이라며 "그때 안 터진 폭뢰가 이제 와서 터질 가능성은 거의 제로(0)"라고 말했다.
6·25 기뢰설과 1970년대 폭뢰설이 나오는 것을 두고 일각에선 정치적 계산의 결과란 관측을 조심스럽게 제기한다. 국책연구소의 B박사는 사견임을 전제로 "폭발한 것이 우리 것이어도 문제고 북한 것이어도 정부로선 뒷감당이 힘들다"면서 "60년 전 북한 기뢰나 30년 전 폭뢰가 원인이라고 하면 일단 파장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한 게 아닌가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