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수와 사랑에 빠진 쌍둥이 동생
… 상업성 - 작품성 사이에서 길 잃어
 




쌍둥이 형제 진우와 진호는 누구도 쉽게 구분할 수 없을 만큼 닮았다. 겉모습 만큼 그들의 운명 또한 닮아있는지, 외국에 있던 동생 진호가 먼저, 그리고 형 진우가 뒤따라 사고로 혼수상태에 빠진다. 형 진우가 아직 깨어나지 못했을 때 건강을 회복한 동생 진호가 돌아오고, 형의 아내를 사랑하게 된다. 진우의 아내 연이는 모든 것이 혼란스럽다. 자신이 사랑한 남자와 같은 모습, 같은 목소리를 가진 남자가 나타나 그녀를 흔들어놓는다. 결국 두 사람은 사랑을 나누고, 형 진우가 혼수상태에서 깨어나자 세 사람의 엇갈린 사랑은 파국으로 치닫는다.



쌍둥이 형제의 금지된 사랑이라는 기본 설정은 처음부터 관객의 흥미를 자극한다. 그러나 영화가 관객에게 보여주는 것은 단순한 사랑 놀음이 아니라 진정한 사랑이 무엇이냐는 물음이다.

진우을 배신하는 것에 괴로워하면서도 끌리는 그들의 사랑은, 처음엔 마치 운명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그 운명 또한 결국 말장난에 불과하다. 동생 진호는 모든 사실을 알게 된 형에게 그녀가 시들어가는 꽃 같아서 안타까웠다고 용서를 빈다. 연이의 마음은 운명이란 이름을 가장한 거짓말에 왔다갔다한다.

영화를 보고 난 후 관객은 의심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과연 사랑은 스스로 찾아오는 운명 같은 것일까, 아니면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일까. 사랑이란 대체 무엇인가.

영화는 작은 디테일들, 내러티브 사이의 공백을 놓치지 않기 위해 애쓴다. 보여주고, 설명하고, 부족하면 내레이션을 넣는다. 하나하나 세심하게 연출했음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그 결과가 성공적이었냐는 질문엔 부정적인 답을 할 수 밖에 없다. 내레이션과 스토리의 연결, 보통은 영화의 양념이 되어야 할 조연들의 등장, 영화 전반부에 보여지는 복선들과 영화 후반부에서의 표면화, 심지어는 반전까지 모든 것이 덜커덕거린다.

영화 전체의

흐름이 자연스럽지 못하게 끊어지는 느낌이다. 이렇게 매끄럽지못한 전개에서 영화의 정사신은 선정성을 이용한 홍보수단으로 밖에 보여질 수 없다. 진우와 진호, 1인 2역을 한 유지태의 열연은때때로 과장된 듯 부담스럽게 다가왔다. 짜임새를 잃어버린 영화 흐름 속에서 윤진서의 섬세한 연기도 제 빛을 내지 못했다.

류훈, 권지연 감독은 상업영화이면서 동시에 예술성과 작품성을 갖추고 싶었던 듯하다. 하지만 이 둘은 어우러지지 못했고, 영화는 중간에서 길을 잃었다. 차라리 상투적인 장면과 연기, 대사로 치명적 사랑과 파국을 표현했다면 훨씬 '재미있는' 영화가 탄생하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남는다.

< 김은솔ㆍ청룡시네마 명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