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넘게 누워 있는 식물인간에게 의사가 뇌 신호를 보낸다. "오늘 특별히 아픈 곳은 없나요? 아프면 파란 하늘을, 괜찮으면 달리는 늑대를 생각하세요." 식물인간의 뇌가 '달리는 늑대'의 신호를 보내 '괜찮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나날이 정교해지는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 등 뇌 관련 기술의 발달로 음성이 아닌 뇌 신호로 대화할 수 있는 날이 급격히 다가오고 있다. 일본 ATR 컴퓨터 신경과학 연구소는 컴퓨터로 조작한 뇌 신호를 전달해 의수(義手)를 움직이게 하는 데 성공했다. 인공 텔레파시를 통해 대화를 넘어 '행동 조작'까지 가능해질 수 있다는 뜻이다. 세계미래학회(WFS)가 향후 약 20년의 밑그림을 담아 발표한 '올해의 미래 전망(2010 Outlook)'을 토대로 지구촌의 미래 모습을 추적하는 '2030 미래를 가다' 2회는 미국 뉴욕대 데이비드 포펠(Poeppel) 교수의 인공 텔레파시 연구를 소개한다.
총알이 빗발치고 대공포가 터지는 참호 속의 두 병사. 각각 왼쪽과 오른쪽을 맡아 주시하는 병사들은 서로를 볼 틈조차 없다. 하지만 이들은 단지 생각만으로 남은 실탄과 전투상황에 대해 서로 교신한다. 무전기에 입을 갖다대고 고함을 지를 필요도, 복잡한 수신호도 필요없다. 본부에도 생각만으로 이메일과 음성 메일을 남긴다. '인공 텔레파시(synthetic telepathy)'가 바꿔 놓을 전투장면의 모습이다. 인공텔레파시는 생각을 그냥 무한대로 주고받는 텔레팔시와 달리 약속되고 훈련된 형태의 메시지만 생각을 통해 주고받는 소통방식이다.
인공 텔레파시는 할리우드 공상과학영화에 나오는 황당한 얘기가 아니다. 아직 초기 단계이지만 중요한 발견과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미 육군은 이를 위해 미 캘리포니아주립대 어바인 캠퍼스, 카네기 멜론, 메릴랜드대 연구팀에 400만달러의 용역을 주고 있다. 메릴랜드대 연구팀을 지휘했던 신경과학자 데이비드 포펠 교수는 뉴욕대로 옮겨 실험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 2월 27일 뉴욕대 신경과학부 건물 2층의 뇌자기파검사(MEG) 연구실. 언어학과 1학년에 재학 중인 닐씨가 머리카락 사이에 센서를 달고, 마치 뇌수술을 하는 수술대처럼 생긴 초전도양자간섭소자 탐지기 속으로 들어갔다. 뇌 내부의 활동을 자기장의 변화로 계측하는 이 연구실은 뇌의 기능별 위치와 작동방식의 비밀을 풀어 '뇌 지도'를 그리는 첨단 연구실이다. 이날은 음성 탐지 실험이 진행됐다. 뇌의 어느 부분이 음성에 반응하는지 측정하는 실험으로 뇌에서 일어나는 자기장의 반응을 전자적 신호로 바꿔 계측했다. 극저온 상태에서 작동되는 초전도 물질의 반응을 탐지하기 때문에 150만달러의 장비는 액체헬륨을 재료로 사용했다. 닐씨가 탐지기 속으로 들어간 지 5분 뒤 청력검사를 받을 때 들리는 '삐…삐…' 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탐지기 바깥의 6개 모니터는 닐씨의 뇌 활동을 그래프로 그려냈다. 그래프는 1000분의 1초 단위(msec)로 쪼개서 뇌파의 높낮이를 측정했다.
실험을 담당하는 그레그 히코크 박사가 수준을 높였다. '개(dog)'라는 단어를 들려주자, 50msec에서 작은 물결, 100msec에서 높은 물결, 200msec에서 높고 길게 퍼지는 물결의 그래프가 모니터에 나타났다. 이번에는 추상적인 개념어. '정의(justice)'라는 단어를 들려주자, 짧은 시간이지만 뇌파는 늦게 반응했다. 높고 길게 퍼지는 물결이 250msec에서 나타났다.
이 연구실은 최근 의미 있는 실험에 성공했다. 실험자에게 '나는 지금 뉴욕 지하철로 달려간다'는 식의 문장과 '바에서 맥주를 즐기며 음악을 듣고 있다'는 식의 서로 다른 여러 문장을 한 번만 말하도록 한 뒤, 실험자의 생각만으로 어떤 문장을 말하는지 알아맞힌 것이다. 포펠 교수는 "마치 모스부호처럼 정보를 담은 패턴이 뇌로부터 발산되는 것을 탐지했다"고 말했다. 아직은 뇌수술대처럼 큰 무지막지한 장비가 필요하지만 나중엔 간단한 헬멧 혹은 야구모자 같은 것을 쓰면 이 모스부호 같은 전자자기신호를 통해 서로의 생각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인공 텔레파시'의 원리는 이미 실생활에 이용되고 있다. 지난 2월초 뉴잉글랜드 메디슨 저널에 발표된 연구결과에 따르면, 교통사고로 5년 동안 사실상 식물인간 상태에 있는 환자와 뇌자기공명(fMRI) 장치를 이용해 대화하는 데 성공했다. 29살의 환자는 "아버지의 이름이 토머스인가" 등의 질문에 "예" "아니요"로 대답했다. 이는 실제로 말을 한 것이 아니라 그렇게 생각하는 것을 뇌자기공명장치가 잡아낸 것이다. 연구자들은 인공텔레파시가 뇌는 정상적으로 작동하는데 서서히 근육의 힘을 잃어가는 루게릭병에 걸린 환자들이 소통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데이비드 포펠 교수는 20~30년 뒤엔 아직 인공텔레파시 수준은 아니지만, 뇌신경과학의 발달로 스타트랙에서 보는 것처럼 '컴퓨터' 하고 말하면 컴퓨터가 알아서 작동되는 완벽하게 음성만으로 명령을 내리는 세상이 올 것으로 예상했다. 그는 "할리우드 영화에서 너무 완벽한 사이보그를 보아왔기 때문에 우리의 과학이 매우 발전된 것으로 착각하지만 가장 발달된 컴퓨터를 어린아이의 뇌와 비교하더라도 장난에 불과한 수준"이라며 "완벽한 음성 인식을 위해서도 두뇌 연구에 비약적인 발전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