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2일 청와대 회의에서 "집권 3년차에 접어든 만큼 청탁이나 이권 개입 같은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문제가 생기면 모두가 공동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다. 대통령은 이후에도 이런 다그침을 거듭하고 있다고 한다. 시의(時宜)에 맞는 지적이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지난 5일 법무부 검찰 경찰 감사원 등 사정(司正)기관 실무책임자들과 회의를 갖고 대통령 지시 이행 방안에 대해 협의했다.
문제는 역대 대통령들도 임기 중반에 접어들면서 이런 다짐을 되풀이하고 수시로 암행 감찰 활동을 벌였지만 권력형 게이트를 틀어막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 그 결과 정권의 권력 누수 현상을 앞당기고, 임기 말에 이르러선 대통령 아들·형님·동생·처남·동서·친사촌·처사촌·처삼촌 등의 친·인척 그리고 끝내는 대통령의 오른팔·왼팔로 불리던 최측근들이 줄줄이 교도소로 향하는 일이 주기적으로 되풀이됐다.
대한민국 대통령들은 왜 가족과 친·인척 그리고 측근 비리에 이렇게 속수무책이었을까. 그 첫째 이유는 청와대·검찰·경찰 등 사정 업무의 최고위층이나 핵심 자리를 부적임자(不適任者)에게 맡긴 것이다. 역대 대통령들은 혈연·지연·학연으로 자기 또는 자기 가족과 가까운 사람을 사정 책임자로 임명했다. 그래야 믿을 수 있고 대통령에게 바른 보고를 하고 기밀도 새나가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그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났다. 사정 책임자들이 대통령의 가족·친인척·측근과 가깝기 때문에 오히려 그들의 비리를 축소하거나 감추는 권력자의 방탄복 구실을 하고 그 자리를 이용해 권력층과 친분을 쌓아 출세의 징검다리로 삼으려 들곤 했다.
둘째, 어쩌다 친·인척 관련 보고가 대통령에게 전달된다 해도 과거 대통령들은 비리(非理) 혐의가 있는 가족과 친인척·측근에게 '네가 그랬느냐'고 물었다가 '아니다'라는 대답을 들으면 오히려 사정 책임자에게 '떠도는 소문만 듣고 엉터리 보고를 했다'고 질책하곤 했다.
셋째, 사정 관련자들이 가족·친인척·측근들에게 불리한 보고를 한 사실은 예외 없이 본인들에게 새나가고 이들의 압력 때문에 조만간에 사정 책임자가 교체되고 말았다. 후임 사정 책임자들이 대통령 가족·친인척·측근 비리는 절대로 보고하지 않는 것을 불문율(不文律)로 삼는 게 당연했다.
넷째, 그 결과 대통령은 정부 안에서는 물론이고 국민 가운데서도 자기 가족·친인척·측근 비리를 가장 나중에 아는 '벌거벗은 임금님'이 돼 버려 대통령이 실상을 알게 됐을 때는 사태가 이미 돌이키기 힘든 지경에 이르고 난 뒤였다.
이 정부가 진정으로 권력형 비리를 차단하고 싶다면 이런 과거의 실패를 먼저 돌아보고 그 실패 위에서 새로운 방안을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