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들아, 과욕을 부리지 마라."
월드컵을 떠올릴 때마다 가슴이 벅차오른다.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인 황선홍 부산 아이파크 감독은 대회를 앞두고 밤잠을 설쳤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잘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 때문에 잠을 못이루고, 골을 넣는 장면을 생각하며 벌떡 일어나곤 했다.
월드컵은 선수들에게 축구인생에 꽃이요, 최종 목표이기도 하다. 황 감독은 "월드컵은 한단계 도약할 수 있는 기회면서도, 한편으로는 월드컵 때문에 내려갈 수도 있다"고 했다.
본선까지 남은 시간은 100일이 채 안된다. 황 감독은 후배들에게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여유를 가지라"고 수없이 당부했다.
그에게 첫 월드컵은 1990년 이탈리아 대회였다. 당시 황 감독은 대학생이었고, 꿈도 그리 크지 않았다.
스스로 전성기였다고 평가하는 1994년 미국 대회가 그에게 사실상 첫 월드컵이었다. 황 감독은 "잘 할 자신이 있었다. 또 굉장히 열심히 준비했다. 그러나 내게 미국월드컵은 실패한 대회였다"고 회상했다. 욕심이 화를 불렀다고 했다.
당시 대표팀은 서울 남산 기슭에 자리잡은 타워호텔에서 합숙을 하고 있었다. 김 호 대표팀 감독이 가장 강조한 것은 첫 경기가 열리는 미국 댈러스의 무더위에 대비한 체력.
황 감독은 "새벽마다 남들보다 일찍 일어나 남산을 달렸다. 새벽훈련을 따로 한 것은 나랑 신홍기 밖에 없었다. 그런데 너무 욕심을 부렸는지 부작용이 나타났다. 발목이 안좋아져 본선에서도 제대로 뛸 수가 없었다. 도전정신도 중요하고, 의욕도 필요하지만 욕심이 독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했다.
1998년 월드컵이 마지막이라 생각했는데, 34세이던 2002년 다시 기회가 왔다고 했다. 이때는 마음을 차분하게 다스리기 위해 늘 심각하지 않고,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책을 곁에 뒀다고 했다. 그는 "평범한 사람들이 일상에서 조그만 것들로부터 행복을 찾는 내용을 담은 책을 주로 읽었다. 축구선수는 여러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공인이다. 늘 무엇인가에 쫓기는 기분으로 살아야 하는데 후배들에게 책이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독서를 권했다.
특히 대표팀 발탁 여부를 놓고 마음 고생이 심한 이동국에게 각별한 애정을 표시했다. "동국이를 보면 안쓰럽다. 나름대로 최고의 위치에 있다고 하지만 프로에서 아무리 잘해도 월드컵은 다르다. 동국이가 마지막 축구인생을 후회없이 마무리했으면 한다. 동국이는 월드컵의 기쁨을 누릴 능력이 있고, 그럴 권리가 있다"고 성원을 보냈다.
황 감독은 "우리 후배들에게 현실에 충실하라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오늘이 없으면 내일도 없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