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주 우리 바둑계는 5년 전 공전의 히트를 쳤던 감동 드라마의 앙코르 공연에 나선다. 제목은 '상하이(上海)대첩Ⅱ'. 9일 중국 상하이에서 막을 올릴 제11회 농심배 세계바둑최강전 최종 라운드가 그 무대다.
스토리 자체는 간단하다. 동양 3개국 남자 단체전인 이 대회에서 2라운드까지 절대 열세에 처해 있던 한국이 주연배우 1명의 힘으로 중국의 인해전술을 헤치고 막판 극적으로 우승컵을 품에 안는다는 이야기. 2005년 이맘때 공연됐던 제6회 농심배 '상하이 대첩Ⅰ'과 똑 닮은 대본(臺本)이다.
5년 전 '상하이 대첩Ⅰ'은 한·중·일 3개국 바둑계를 온통 들었다 놓았었다. 홀로 남았던 이창호가 5연승을 거두고 귀환했을 때 국민들은 12척 배로 수백 척의 외적을 수장시킨 충무공 맞듯 열광했다. 잔류 병력이 3명이나 됐던 중국, 2명이 남아 내심 첫 우승까지 기대했던 일본은 믿기 어려운 역전극에 망연자실했다.
주연배우도 당시와 똑같은 이창호가 캐스팅됐다. 지난주 제11회 LG배에서 우승의 갈증을 푸는 데 실패했지만 그는 여전히 우리 바둑계 최고의 '국민배우'다. 이번 역시 공연지를 향해 떠나는 한국 기사는 그 혼자뿐이다. 대신 상하이 현지에서 중국 3명, 일본 1명의 조연(助演)들이 기다리고 있다.
이번 Ⅱ편에서 이창호에게 부과된 역할은 3승. 남은 '적'이 총 4명인데도 1승이 면제된 것은 우선 일본과 중국 기사가 먼저 맞붙은 뒤 그 승자와 첫 대결을 펼치게 됐기 때문이다. 5승이 필요했던 5년 전 'Ⅰ편'에 비하면 훨씬 수월해 보이지만 그렇지도 않다. '양(量)보다 질(質)'이 이번 드라마의 주제다. 이창호 본인도 Ⅰ편보다 훨씬 더 원숙하고 통쾌한 연기를 벼르고 있다.
일본 하네(羽根直樹) 대 중국 3번 주자전의 승자를 먼저 꺾고 남은 중국 기사 2명을 마저 내치는 것이 한국이 기대하는 이번 드라마의 시놉시스다. 이창호의 대 하네 통산 전적은 4승1패. 구리(古力) 창하오(常昊) 류싱(劉星) 등 중국 선수들에게도 이창호는 각각 5승4패, 23승9패, 1승무패로 앞서 있다.
한국은 이번 대회 1라운드에서 김지석의 3연승, 2라운드 김승재 윤준상 박영훈의 잇단 탈락을 거쳐 이제 최종 라운드를 맞았다. 라운드별로 롤러코스터를 타듯 굴곡이 심했다. 막판 극적효과를 최대로 끌어올리기 위한 치밀한 준비 과정이었는지 모른다. 돌이켜 보면 국가 대항 단체 연승전은 거의 언제나 한국을 위한 행사였고, 그 중심에 이창호가 있었다.
SBS세계최강전(1991년)으로 시작해 92년부터 5년간 치러진 진로배 그리고 99년 바통을 이어받은 농심배를 묶으면 올해로 국가 연승전 17년째가 된다. 지난해까지 16년간 한국은 14번을 우승했고 중국 일본이 한번씩 '맛'을 봤다. 이 17년간 유일하게 개근한 기사가 이창호다. 그리고 총 11회에 걸쳐 최종 주자(주장)를 맡아 자칫 옆으로 새려는 물길을 번번이 한국으로 돌렸다.
한 달 전 '여자 국가 대항전'인 제8회 정관장배서도 한국은 절대 열세 상황에서 마지막 라운드 박지은의 4연승 활약에 힘입어 극적 역전 드라마를 완성한 바 있다. 이제 이런 종류의 역전극은 한국의 전유물로 자리잡다시피 해 이창호의 어깨는 더욱 무거워졌다.
이번 원정은 이창호 개인에게도 중요한 전환점이 될 전망이다. LG배 결승 패배로 최근 5년간 그의 준우승 행진은 9번으로 늘어났다. '적지'에서 또 한번 국가 단체전 역전 드라마를 쓴다면 심기일전의 계기가 마련될 것이다. 35번째 맞이하는 '이창호의 봄'은 과연 상하이에서 활짝 피어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