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가 백승우(37)는 다음 주 뉴욕 행을 앞두고 몸과 머리를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오는 4월 중순 파리에서 개최되는 퐁피두센터 그룹전 《드림랜드》에 출품할 작품을 최근 마무리한 데 이어 6월 국내에서 열리는 '일우사진상' 수상 기념 전시와 사진집 출간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내년 5월 서울 선재아트센터의 대규모 개인전을 앞두고 작품 구상에도 여념이 없다. 뉴욕에 가면 현지 미술관과 그동안 논의했던 전시 계약을 마무리 지을 계획이다.

백승우가 세계 사진 무대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것은 2004년 영국의 사진 전문잡지 〈포트폴리오〉 표지에 작품이 실리면서였다. 당시 이 잡지 편집장이 런던에서 대학원에 다니며 작품을 선보이던 백승우의 작품 〈Real World〉 시리즈를 잡지에 실었다. 다음 해 런던에서 열린 사진페어에서 사진 컬렉터인 마이클 윌슨이 백승우의 작품 〈Blow up〉 시리즈를 사들였다. 영화 '007시리즈'의 프로듀서인 윌슨은 가수 엘튼 존과 함께 대표적인 사진 컬렉터로 꼽힌다. 이후 백승우의 작품은 미국 휴스턴미술관을 비롯해 산타바바라 미술관,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 등에 소장됐다.

백승우는“머리와 생각까지 사로잡을 수 있는 작품을 위해 치열하게 고민한다”고 했다.

백승우가 사진과 만난 것은 대전중 2학년 때였다. 함께 살았던 삼촌이 미대에 다니며 사진동아리 활동을 했고 집 2층에 암실(暗室)을 꾸몄다. 백승우도 삼촌과 함께 사진을 찍고 인화해서 사람들에게 나눠줬다. "제가 준 사진을 보고 사람들이 '대단하다'고 하니까 신이 났어요." 백승우는 그때부터 이미지의 매력에 빠져들었고 중앙대 사진학과에 진학했다. 그는 "대학 졸업 무렵 패션잡지 화보를 찍었는데 열정을 쏟아 찍은 사진이 한 달만 지나면 없어져 허무했다"면서 "그때부터 오래갈 수 있는 사진을 찍자고 마음먹었다"고 했다.

그는 유학을 택했고 런던에서 '행운'을 만났다. 데미안 허스트 같은 yBa(젊은 영국 작가들)를 배출한 영국 골드스미스 대학의 전설적인 존 톰슨 교수를 영국 미들섹스 대학에서 만난 것이다. 백승우는 미들섹스 대학원 면접시험에서 만난 존 톰슨에게 "내가 학생으로 들어가면 뭘 해줄 수 있느냐"고 저돌적으로 물었고, 톰슨은 백승우를 제자로 받아들였다. 후에 톰슨은 백승우에게 "내가 만난 다른 한국 학생들은 예의 바르고 성실했는데 너는 잘 못해주면 칼로 찌를 것 같은 사무라이처럼 보였다"고 말했다.

미들섹스 대학원 시절 백승우는 매달 1일이면 200만원 정도의 돈을 들여 필름 100통을 샀다. 그는 "한 달 동안 100통을 찍겠다는 다짐이었다. 아무리 열심히 찍어도 한 달 동안 40통 정도밖에 못 찍었다. 나머지는 아까웠지만, 뚜껑을 열고 쓰레기통에 버렸다"고 말했다. 필름을 산 만큼 생활비가 쪼들릴 수밖에 없었지만, 배수진을 친 것이었다. 백승우는 "돈뿐 아니라 동양에서 온 젊은 남자에게 아무 관심도 없는 주변과 싸우느라 영국에서는 하루하루가 전쟁 같았다"고 말했다.

백승우는 영국에서 정체성과 공간이라는 문제를 두고 고민하다 〈Real World〉 시리즈를 만들어냈다. 인천공항에서 집으로 가는 버스에서 경기도 부천에 있는 미니어처 공원인 아인스월드에 세워진 에펠탑을 발견했던 것이다. 유명 건축물을 통해 허구와 실재를 중첩한 작품이었다.

〈Blow up〉시리즈는 백승우가 2000년 북한 방문단에 들어가 북한 풍경을 찍은 것이 토대가 되었다. 당시 백승우가 찍은 사진은 북한 감시원이 철저히 통제하고 필름까지 검열했기 때문에 이미지들이 획일적이었다. 백승우는 과거에 찍었던 북한 필름을 정리하다 북한 당국이 미처 잘라내지 못한 공간을 발견했다. 이것을 집중적으로 확대해 북한의 내면을 보여준 〈Blow up〉 시리즈를 탄생시켜 주목을 받았다.

백승우는 "그동안 한국 작가들의 사진은 미술에 가려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면서 "사진이 본격적으로 평가받는 첫 세대인 만큼 사명감과 책임감을 갖고 작품 활동을 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