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밤 영국의 BBC 방송에 의하면 10일의 역도 경기에서 미들급의 김성집(金晟集)군은 인상에서 122키로500을 들어 올림픽 기록을 깨트렸으며, 총계 380키로라는 호성적으로 세계 제3위를 차지하여 처음으로 우리나라 태극기를 엠부레이 스타디암에 올렸다 한다. 김군은 동 방송에서 '고국에 계신 동포여러분, 그동안 삼복더위에 안녕하십니까. 저로서는 최선을 다하였으나 여러분의 기대에 어그러져 죄송합니다. 하여튼 이만한 성과를 보게 된 것은 오로지 국내에 계신 동포 여러분의 성원과 선배들의 지도해주신 덕택으로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1948년8월13일자 조선일보 2면〉<사진 왼쪽>

대한민국의 올림픽 첫 메달 획득 소식은 이렇게 며칠 뒤에야 국내에 알려졌다. 당시 제14회 런던 하계올림픽에 출전한 우리 대표단의 공식 명칭은 '조선 선수단'이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전 미 군정 시기였기 때문이었다. 휘문고와 보성전문(고려대의 전신)을 졸업한 김성집은 이미 1936년 일본 역도 선수권대회 및 베를린 올림픽 대표선발전에서도 우승했지만 일제의 차별대우로 올림픽 참가가 무산됐었다. 김성집이 동메달을 딴 지 이틀 후 복싱 플라이급에 출전한 한수안(韓水安)도 체코 선수를 물리치고 동메달을 추가했다.

한국의 올림픽 첫 금메달은 올림픽에 처음 출전한 지 28년 만에 나왔다. 1976년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린 제21회 하계올림픽 대회에서 레슬링 자유형 페더급에 출전한 양정모(梁正模)가 결승리그에서 세계선수권자인 몽고의 오이도프를 제치고 시상대 맨 위에 섰다.<사진 오른쪽> 양정모의 금메달은 당시 삼엄한 남북 대치 상황에서 스포츠에서 처음으로 북한을 앞선 것이어서 우리 국민들의 반응은 더욱 뜨거웠다. 북한은 첫 올림픽 참가인 1972년 뮌헨 올림픽에서 사격 소구경 복사의 이호준이 세계신기록을 쏘며 금메달을 따는 등 금메달 1개, 은메달 1개, 동메달 3개를 따내 은메달 1개에 그친 한국을 압도했다. 한국의 동계올림픽 첫 메달은 92년 알베르빌 대회서 김윤만이 스피드스케이팅 1000m에서 따낸 은메달. 한국은 이틀 뒤 김기훈이 쇼트트랙 남자 1000m도 석권하면서 금메달 숙원도 풀었다.

한국이 역대 올림픽에서 따낸 메달은 현재 총 251개다. 하계올림픽에서 215개를 획득했고, 동계올림픽에서는 이번 밴쿠버 대회에서 딴 5개를 포함해 36개이다. 이 가운데 금메달은 88개이며, 종목별로는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이 18개로 양궁(16개)을 제치고 단연 1위를 지키고 있다.

한국인으로서 올림픽에서 처음 메달을 딴 사람은 1936년 베를린 대회 때 마라톤에서 우승한 손기정이지만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공식 기록에는 일본인 '기테이 손(Kitei Son)'의 금메달로 남아 있다. 손기정과 함께 출전한 남승룡도 동메달을 획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