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해양부는 항공 테러 위협에 대비해 국내 공항 4곳에 '알몸투시기(Full-body scanner)'로 알려진 전신검색기를 상반기 중 설치 운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조선닷컴 1월27일 보도
알몸투시기는 미국·유럽에서 사생활 침해 논란을 일으켰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누군가가 자기 나체(裸體)를 본다는 게 불쾌하다는 것이다. 국내 여론 조사기관인 '리얼미터' 조사에서 알몸투시기 도입 찬성이 46%였지만 반대도 34%나 됐다.
알몸투시기는 아무 승객이나 통과하는 게 아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과 항공보안청(TSA)이 테러위험 대상자로 지명한 요주의(Selectee) 승객이 최우선 대상이다. 이 'S급 인사'는 작년 한 해 인천국제공항에 10명 정도 있었다.
'S급'은 카운터에서 티켓을 발급받은 후부터 보안요원의 감시를 받는다. 항공권에도 별도 표시가 돼 있다. 일부 항공사는 'S급'에게 비행기표를 팔지 않는다. 삼성그룹 최고 인재인 'S급'과 호칭은 같은데 대접은 정반대다.
테러위협 국가로 지목된 14개국 국민도 알몸투시기를 통과해야 한다. 자기 나라에서 비행기를 탄 뒤 우리나라 공항에서 환승(換乘)하는 이들 국가 승객도 알몸투시기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
14개국은 아프가니스탄, 알제리, 이라크, 레바논, 리비아, 나이지리아, 파키스탄, 사우디아라비아, 소말리아, 이란, 예멘, 쿠바, 수단, 시리아다. 이들 국민은 미국 공항에서 올 1월부터 전원 신체검색을 받고 있다.
작년 12월 미국 여객기 폭탄테러 기도 사건 이후 취해진 조치다. 인천공항공사 관계자는 "이들 국민이 모두 테러위협 분자는 아니지요. 그런데 어떡하겠습니까. 다른 공항들이 다 하는데 우리만 빠질 순 없잖아요"라고 했다.
여기에 문형(門型)탐지기나 휴대용 금속탐지기를 이용한 1차 검색에서 의심스러운 점이 발견된 승객, 소지한 여권을 발행한 나라의 말을 못하는 승객도 알몸투시기 검색을 받게 된다.
임신부나 영·유아를 비롯해 대부분의 내국인은 검색 대상에서 제외될 전망이다. 하지만 테러 위협이 높아지면 미국행 승객을 중심으로 알몸투시기 검색 대상이 늘어날 수 있다. 알몸투시기는 출국장에만 설치된다.
알몸투시기 검색을 원치않을 경우 거부할 수 있을까. 답은 '예스(yes)'다. 대신 더 가혹한 '정밀검색'을 받아야 한다. 이 정밀검색은 'S급' 승객과 1차 검색에서 걸린 승객을 대상으로 오래전부터 시행돼왔다.
보안요원 2명의 호송을 받아 별실로 들어가면 성별이 같은 검색요원이 들어온다. 여기에선 속옷만 남기고 다 벗은 상태에서 조사가 이뤄진다. 의심 부위를 육안(肉眼)으로 샅샅이 살펴보는 데 필요하면 '그곳'도 확인한다.
정밀검색 대상은 하루 60~80명 정도라고 인천공항 보안 관계자는 말했다. 인천공항 하루 출국자가 4만명가량이니 1000명당 1.5~2명인 셈이다. 그래서 정밀검색을 받느니 옷 입고 하는 알몸투시기 검색이 낫다는 말이 나왔다.
일부 승객에겐 알몸투시기가 오히려 고맙다. '은밀한 부위' 등 피부 속에 쇠심이나 쇠구슬이 박혀있는 사람들이 그렇다. 이들은 금속탐지기를 특정 부위에 갖다대면 계속 '삐삐'소리가 울린다.
출국 때마다 망신당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승객이 인상까지 험악하다면 십중팔구 정밀검색실로 가서 옷 다 벗고 조사받아야 한다. 하지만 이들은 알몸투시기가 들어오면 쉽게 '누명'을 벗을 수 있다.
뼛속 금속물질에도 반응하는 금속탐지기와 달리 알몸투시기는 피부 표면만 보여준다. 화면에 깨끗하게 나오니 '삐삐'소리를 낸 물질이 폭탄·흉기가 아니라 뼈를 잇는 의료장치나 보조기구라는 사실이 저절로 입증된다.
수년 전 서울 강남에서 열린 외국정상회의 당시 '그곳'에 금속장치를 한 외신기자가 금속탐지기 조사에서 거부 반응을 일으켜 입장이 거부되는 작은 소동이 벌어졌다. 만일 알몸투시기가 있었다면 쉽게 해결될 문제였다.
현재 알몸투시기를 제작하는 나라는 미국·독일·러시아다. 미국 모델이 많이 팔리는데 L3 Communication사가 만드는 Provision 100, Rapiscan Systems가 만드는 Secure 1000, AS&E사가 만드는 Smartcheck가 대표적이다.
Provision 100은 미국·네덜란드·호주·인도네시아 공항에 설치됐다. Secure 1000은 미국·영국·호주 공항에 있으며 Smartcheck는 호주 일부 공항에 있다. 이들 업체는 국내 공항을 상대로 활발하게 판촉 활동을 벌이고 있다.
승객이 공중전화 박스 크기 검색대에 올라 양발을 벌리고 양손을 위로 올리면 카메라(스캐너)가 회전하면서 몸을 훑고 지나가고 이 이미지가 검색 모니터에 나타난다. 소요시간은 1인당 7~30초다. 대당 17만~25만 달러선이다. 미국 방사선학회는 "승객이 알몸투시기로 받는 방사선량은 비행기 탑승 중 받는 방사선량보다 적다. 인체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다"고 했다.
알몸투시기는 인체의 어디까지 보여줄까. 기계 성능만 최대로 한다면 몸매는 물론 남성 성기와 여성 유방 형태까지 적나라하게 드러낼 수 있지만 각 나라와 공항 요구에 맞춰 노출 수위나 선명도를 조절한다.
국토부 관계자는 "얼굴과 은밀한 부위는 모두 흐릿하게 처리할 것"이라며 "만일 그 부위에 의심물질이 있다면 별도 색깔 등으로 표시가 나게 할 방침"이라고 했다. 사생활 침해 논란을 잠재우려 모든 승객이 똑같은 사람 모형으로 나오면서 위험물질만 표시되는 장비를 찾고 있는데 아직 그런 기계는 출시되지 않았다고 한다.
사진은 자동 삭제되며 출력·전송 기능을 없앤 장비를 들여올 계획이다. 사진 분석요원은 승객을 볼 수 없는 별도의 방에 있고 이 방엔 카메라나 휴대폰 등을 갖고 들어갈 수 없다. 남자는 남자, 여자는 여자가 분석한다.
알몸투시기 시스템에 대한 해킹은 가능할까. 인천공항공사 관계자는 "불가능하다"고 했다. 알몸투시기 장비와 모니터 사이에만 케이블로 연결돼 있고 다른 전산망과는 접속이 차단돼 있어 외부 접근이 안 된다고 했다.
분석 모니터엔 사진만 제공되고 승객 이름이나 여권 정보가 나오지 않는다. 승객에게 폭발물 등 위험 물질이 발견되면 모니터 분석 요원은 신호음으로 검색대에 알려준다.
그러나 보안요원들이 단체로 '나쁜 마음'을 먹으면 승객 신체 정보가 외부에 유출되지 말란 법은 없다. 인권단체에선 "각종 대책이 알몸투시기에 선 승객의 불안감을 줄여줄 순 있겠지만 '수치심'까지 없애진 못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