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늦게 퇴근하고 휴가 때도 연구실에 나와 '별종(別種)' 취급받았는데 이제 보람을 찾았습니다."
7일 서울대 물리학과 연구실에서 만난 양희준(29)씨는 영문과 국문 논문을 꺼내 보였다. 영문은 지난달 프랑스 파리11대학에서 받은 박사학위 논문이고, 국문은 오는 26일 서울대에서 받게 될 박사학위 논문인데 내용은 같다.
서울대에서 다른 대학과 동시에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은 양씨가 처음이다. 서울대는 2002 프랑스 에섹 경영대학원(ESSEC MBA)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13개교와 '복수학위 협정'을 맺었지만, 석사학위만 20명(외국인 6명 포함) 나왔다. 서울대와 파리11대학은 2005년 '복수학위 협정'을 맺고 두 대학의 교과과정과 논문심사를 통과하면 동시에 학위를 주기로 했었다. 양씨는 "서울대를 모르는 이들에게는 파리11대학 학위로, 파리11대학을 모르는 국내인들에게는 서울대 학위로 내 능력을 평가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복수학위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카이스트 출신인 그는 2003년 서울대 물리학과 석·박사과정에 진학해 차세대 메모리를 연구했다. 그러다 2005년부터 '그래핀'이라는 물질 연구에 매달리게 됐다. 그래핀은 메모리에 사용되는 실리콘보다 100배 작은 크기로 100배 빠른 속도를 낼 수 있는 물질이다. 양씨는 2006년 10월 그래핀 연구에 독보적인 파리11대학으로 떠났다. 하지만 녹록하지 않았다. 그는 "처음에는 토론식 연구지도를 못 따라가 애를 먹었다"며 "연구실을 나서면 지하철이 끊기고 식당도 문 닫는 시간이었다"고 했다. 논문 심사를 받기 위해서는 3차례 파리와 서울을 오가야 했고, 서울대 최종심사를 위해 직접 비용을 마련해 프랑스의 교수들을 모셔와야 했다. 하지만 새 분야를 연구하자는 생각에 배고픔·피곤함 등은 충분히 감내할 수 있었다. 결국 양씨는 그래핀 구별법을 찾아내 '그래핀의 원자구조에 따른 물성 변화'라는 박사논문을 썼다. 그는 다음 달부터 삼성종합기술원에서 일하며 그래핀 양산법을 연구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