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주의 사학자 단재 신채호는 '묘청의 난'(1135년·고려 인종 13년)을 우리역사 천년의 흐름에서 최대사건이라 칭송한 바 있다(一千年來 第一大事件). 묘청 일파의 서경(오늘의 평양) 천도운동을 실패한 반란으로 보는 게 근시안적 관찰이라는 주장이다. 단재는 개탄하기를 '세상이 온통 잔약·쇠퇴·부자유의 길로 들어서게 된 것은, 독립당과 진취사상을 대표한 묘청이 사대당(事大黨)과 보수사상을 대변한 김부식에게 패함이 그 원인'이라고 절규한다. 일제강점기 민족정기 회복을 위해 싸운 단재에게는 묘청의 칭제건원론(稱帝建元論·고려도 황제를 칭하고 독자 연호를 쓰자는 운동)과 금나라 정벌론이 매력적으로 들렸을 게 틀림없다.
그러나 단재는 주관적 신념이 객관적 현실을 압도하는 '해석의 과잉'이라는 함정에 빠져있다. 인종이 부추긴 서경천도운동은 온갖 대의명분으로 포장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 뒤에서는 인종 자신의 정략, 서경파와 개경파의 권력투쟁, 당대 대륙정세에 대한 묘청 일파의 오도(誤導) 등이 얽혀 곪아가고 있었다. 묘청의 난은 그 필연적 귀결이었던 것이다. 단재와 달리 나는 묘청의 시도가 성공했더라면 고려도 송나라처럼 존망의 위기에 직면했을 것이라 본다. 후에 인종이 "짐이 진실로 밝지 못하여 (묘청의) 말에 그르치게 되어 성과가 없고 말았다"고 자책했지만 때늦은 후회에 불과했다.
세종시 문제가 '세종시 전쟁'의 단계로 비화하고 있다. 여론싸움의 맥락에서는 거의 내란의 상태라 할만하다. 명분과 이해관계가 얽혀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국가백년대계론과 국토균형발전론의 명분대립 뒤에서는 처절한 권력싸움이 진행 중이다. 지역갈등, 지방선거와 차기대권을 둘러싼 여야와 시민사회의 다른 셈법, 현재권력과 미래권력의 무한대치, 그 와중에 급변하는 국제정세가 망각되고 있는 것까지 '묘청의 난'과 여러 점에서 닮았다. 역시 역사라는 과거는 미래를 비추는 현재의 거울인 것이다.
세종시와 관련한 입장을 먼저 밝히자면 나는 세종시라는 수도분할정책을 지금이라도 폐기하는 것이 나라를 위해 최선이라고 본다. 물론 고향땅을 내놓은 현지주민들에게 최대한의 추가보상과 국가차원의 위로가 있어야 한다는 전제를 두고 하는 얘기다. 서울에서 몇 시간 거리에 있는 허허벌판에 행정부처를 옮겨도 수도권 과밀해소에 별 보탬이 될 것 같지 않고 국토균형발전에 크게 기여할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종시 전면백지화는 국가정책에 대한 신뢰를 훼손하고 절차적 민주주의에도 위배되므로 시행 불가능한 방안이다. 따라서 차선책이 불가피하다. 균형발전은 진정 아름다운 말로서 이 시대 최대 과제 가운데 하나일 터이다. 수도분할의 최고목표가 국토균형발전이라면 세종시의 적지(適地)는 충청이 아니라 호남일 것이다. 한국 현대사에서 경제적으로 소외되고 정치사회적으로 배제되어 온 대표지역이 호남이기 때문이다. 세종시가 들어설 충남은 주민소득과 인구유입 등에서 다른 지역보다 높은 수준을 과시한다. 따라서 세종시의 호남행이 전국토의 균형발전이라는 대의명분에 더 부합한다. 게다가 호남에는 충청지역에 가까우면서 환(環)서해안시대에 대비하는 새만금이라는 황금의 땅이 마련되어 있지 않은가. 그러나 이것도 한 개인의 부질없는 상상에 지나지 않을 터이다.
현 정부가 추진하는 세종시 수정안은 나름의 충정을 담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또 다른 무리수에 불과하다. 정부부처 이전을 취소한 대가로 특혜를 양산해 전국차원에서 정당화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결국 세종시 전면백지화라는 최선책과 세종시 새만금행이라는 차선책은 이루어질 수 없는 꿈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세종시 수정안이 일종의 블랙홀이라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오직 하나의 방안만 남는다. 즉 두 민주정부가 확약하고 여야합의로 국회를 통과한 세종시 원안 그대로 시행하는 방법밖에는 없다. 이는 정치적 역학관계를 떠나서도 불가피한 판단이다.
그 방안은 너무나 힘겨운 길이지만 불행히도 한국민주주의가 감당해야만 하는 길이다. 세종시 원안을 추진한 정치인과 지식인의 이름과 논리는 묘청의 난처럼 두고두고 후세의 반면교사(反面敎師)로 남게 될 것이다.
입력 2010.02.03. 22:43업데이트 2010.02.05.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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