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마(MoMA·뉴욕 현대미술관) 2층에 들어서면 로비 천장에 매달린 고래의 거대한 뼛조각에 압도당한다. 자연사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이 뼛조각은 멕시코 작가 가브리엘 오로즈코(Gabriel Orozco)의 작품 〈모바일 매트릭스(Mobile Matrix·2006)〉다. 오로즈코는 멕시코 해안에서 오래전에 숨진 고래의 뼈를 모아 3개월에 걸쳐 원래 모습대로 골격을 짜맞췄다. 뼈 위에 수많은 동심원을 그려 넣었고, 수많은 원들은 서로 충돌하기도 하고 더 큰 원을 이루며 거대한 드로잉이 됐다. 사람들은 고래의 뼈 위에 그려진 수많은 원을 보면서 고래가 헤엄쳐 다니던 바닷속을 상상하고 파도 소리를 떠올린다.

오로즈코는 죽은 고래의 뼈 위에 새로운 상상력과 새로운 생명을 입혀 살아 있는 생물체로 살려놓는 동시에 조각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불어넣었다. 모마가 기획한 오로즈코의 회고전은 상상력을 통해 보이는 것 이면에 잠재된 새로운 것을 보게 해준다.

가브리엘 오로즈코의 작품〈모바일 매트릭스〉. 작가는 거대한 고래의 뼈 위에 수많은 동심원을 그려 다양한 상상이 가능하게 했다.

뼛조각으로 짜맞춘 죽은 고래… 육신은 죽었지만 예술로 부활

1962년 멕시코에서 피아노를 전공한 어머니와 미술대학 교수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오로즈코는 1990년대 이후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 중 한 명으로 꼽히고 있다. 그는 장르를 뛰어넘어 다양한 실험을 해왔으며, 베니스비엔날레와 카셀 도큐멘타 등 주요 전시에 참가하면서 다른 작가들에게도 영향을 미쳐왔다. 이번 오로즈코 회고전에는 조각을 비롯해 회화·드로잉·사진·설치작품까지 다양한 장르가 망라돼 있다.

가운데 부분 잘라내버린 車같은 측면… 정면은 또다른 美

모마에서 열리고 있는 멕시코 작가 가브리엘 오로즈코의 회고전에 나온 작품〈La DS〉. 작가는 자동차 시트로앵의 실제 모델을 변형해 독특한 미감과 혼란을 동시에 불러일으키고 있다.

오로즈코의 〈La DS(1993)〉는 프랑스산(産) 자동차인 시트로앵의 1960년대 모델 'La DS'를 변형한 작품이다. 작가는 차를 세로로 길게 3등분해 가운데 부분에 해당하는 3분의 1을 잘라내고 나머지 양쪽을 붙여버렸다. 옆에서 본다면 기존의 모습을 가지고 있지만 앞에서 보면 전혀 다른 형태의 차가 돼버린 것이다. 차는 달리는 기능은 잃어버렸지만 공기역학적인 디자인은 한껏 강조돼 새로운 미감(美感)을 보인다. 관람객은 변형된 시트로앵을 보면서 아름다움 속에 내재된 혼란스러움을 동시에 느낀다.

아름다움 속에 감춰진 혼란… 당신은 그 이면을 보고있는가

사진을 통해 보여주는 〈My Hands Are My Heart(1991)〉는 진흙을 사용해 두 손으로 만든 하트를 발견할 수 있다. 작가는 마치 촉촉한 진흙을 두 손으로 한 번 움켜쥔 것만으로도 훌륭한 조각 작품이 될 수 있다고 말하는 것 같다. 작품 제작에서 불필요한 과정을 최소화해 물질이 가지고 있는 본질을 잘 표현하고 있다.

오로즈코는 세계를 여행하면서 작품을 제작해왔는데, 〈Korean Air(1997)〉는 대한항공 비행기 표 위에 드로잉을 한 작품이다. 당시 시간과 공간이 비행기 표라는 '타임캡슐'에 봉인되고, 작가의 터치를 통해 예술 작품으로 거듭났다.

오로즈코는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그냥 지나치는 것을 작품을 통해 새롭게 보게 만드는 것을 주제로 삼고 있다. 지금 당신 주변에 존재하는 것 모두가 아름다울 수 있고 작품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다.

작년 12월 13일부터 시작된 오로즈코의 전시는 모마에서 3월 1일까지 이어진 뒤, 바젤 쿤스트뮤지엄과 파리 퐁피두센터·런던 테이트모던까지 순회 전시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