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화학연구원 오헌승 원장

자동차는 부피 기준 50% 이상이 석유화학소재로 이루어져 있고, 석유를 태워 달린다. 현재로서는 석유가 없는 자동차 세상은 있을 수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석유는 높은 효율, 저렴한 생산비, 다양한 산업원료 물질로서 무한한 활용가치 덕분에 20세기 이후 산업 문명을 떠받치는 핵심적인 역할을 해왔다. 그런 석유가 없으면 어떻게 될까. 자동차도 만들 수 없고, 비행기도 날지 못하는 걸까.

다행스럽게도 그렇진 않다. 지구에 무한정인 식물자원으로 자동차 소재와 연료를 만드는 기술의 상업화가 눈앞에 다가오고 있다. 효소나 미생물 등 생촉매의 생물공학적 기술이나 화학촉매, 열분해 등의 물리 화학적 전환을 이용하는 방법이다. 그 같은 방법을 통해 바이오기반 화학제품 또는 바이오 연료를 생산하는 바이오화학이 바로 그 기술이다.

◆고부가가치와 친환경성이 특징

바이오화학소재는 기존 석유화학소재의 기능을 대부분 구현할 수 있다. 여기에 더해 자연 친화성으로 인하여 제품의 품위를 격상시키고 고부가가치를 만들어낸다. 바이오화학소재의 수요가 늘어나게 될 또 다른 주요한 요인은 CO₂저감을 통한 환경보호이다. 전 지구인의 공통 관심사인 환경규제, 석유자원의 고갈 및 수요증가, 기후협약 등은 기존 에너지 및 화학산업 기반의 부품 경쟁력을 점차 약화시키고 있다. CO₂배출 저감에 따른 탄소세 제도의 효과적 대응, 환경규제 및 무역장벽과 고유가 대응 등 그 효과는 다방면에서 기대된다.

◆'팔방미인' 제품 적용 사례들

바이오화학소재는 일상생활에서 친근하게 사용하고 있는 거의 모든 소재를 대체할 수 있다. 플라스틱이나 의류, 식품, 의약품은 물론 각종 주방용품, 세제 및 화장품뿐만 아니라 자동차 내외장재 등 산업용 소재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고 광범위하다.

바스프, 듀폰, 삼성, 현대자동차, 도요타, 카길 등 세계적인 화학·전자·자동차·식품·농업 기업에 이르기까지 기존 제품에 바이오화학을 어떻게 접목할 것인가가 새로운 연구개발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바이오화학 기술의 세부적인 응용사례를 살펴보자. 우선 바이오에너지 분야에서는 바이오디젤, 바이오에탄올이 석유 대체에너지원으로 각광을 받으며, 최근 그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1차 세계대전 이후에 이미 산업적 생산이 이뤄졌다가 값싼 석유에 밀려 박물관으로 갔던 기술인데, 최근 고유가로 인해 다시 관심을 받고 있다.

바이오플라스틱 분야에서는 미국 곡물 회사인 카길이 미생물 발효로부터 생산한 젖산을 이용해 PLA수지를 만들어 생분해성 플라스틱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IT 소재분야도 주목할만하다. 40% 바이오플라스틱 소재를 외장재로 사용한 삼성전자 리클레임폰이 미국시장에서 호응을 받고 있고, 일본 후지쯔사는 70%의 바이오플라스틱을 13종의 노트북 케이스에 적용해 소비자들의 감성을 자극하고 있다.

◆자동차·건축·생필품 등도 '바이오'

자동차 소재 분야에서는 지난해 7월 네덜란드 DMS사가 고성능 바이오플라스틱인 'EcoPaXX'라는 제품을 개발해 주목받았다. 녹는점이 250도 이상인 이 제품은 앞으로 엔진부품 및 차체 등에 적용된다. DMS사는 향후 차체의 80% 이상이 이 같은 재생가능한 물질로 구성될 것으로 보고 있다. 차체 무게를 10% 줄이면 연료를 5% 절약할 수 있어 바이오화학소재로 차량 경량화와 친환경성, 연료의 효율을 동시에 만족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건축 소재 분야는 이미 국내에서도 옥수수 벽지가 인기다. 옥수수 전분으로 만든 웰빙벽지는 새집 증후군과 환경호르몬이 없고 생분해성으로 친환경성을 인정받아 소비자들의 관심이 부쩍 늘고 있다. 미국 다우케미칼과 카길은 각각 'RENUVA'와 'BiOH'라는 폴리올 소재로 소파, 시트 등의 생활 소재에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장판, 단열재, 접착제 등에서도 바이오화학소재가 확산되고 있다.

생활용품 소재 분야는 '웰빙' 붐을 타고 감성소재, 친환경소재, 건강소재로 관심을 끌고 있다. 화장품·헤어케어·바디케어 등 여성용품과 아기용품 등에 적용되고, 쓰레기 종량제 봉투와 쇼핑봉투, 롤백 등에도 쓰이며, 컵·도시락 등 일회용품에도 사용되는 등 이미 일상생활 속 깊숙이 파고들고 있다. 섬유 소재 분야에서도 미국 듀폰사가 제넨코사와 공동으로 포도당으로부터 프로판디올을 생산하는 미생물을 개발해 폴리에스터 섬유를 만들고 있다.

◆바이오 '글로벌 주도권' 잡아야

우리나라는 100% 석유 수입국임에도 불구하고 세계 5위권의 석유화학산업을 일궜고, 이를 기반으로 단기간에 급격한 경제성장을 이뤄냈다. 앞으로 바이오화학 분야의 발전을 통해 우리나라 화학산업의 질적 전환은 물론, 기술과 환경이 조화를 이루는 지속가능한 산업으로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 본격적인 국가 간 경쟁에 앞서 정부와 업계, 학계, 연구기관 등이 합심하여 바이오화학산업의 글로벌 주도권을 잡아 나가는 지혜를 발휘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