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대와 열대의 중간에 있는 한반도는 겨울 철새들에게 중요한 길목이다. 겨울로 접어드는 11월부터 2월까지 수많은 새가 한반도를 거쳐가는데,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그런 보물을 지척에 두고 찾아보지 않으면 아까운 일이다. 겨울이 다 가기 전에 가족들과 한 번쯤 주말 드라이브를 겸해 철새 관찰에 나서보자. 아이들에겐 더없이 좋은 환경 교육도 된다.
환경부와 국립생물자원관이 작년 1월 전국의 겨울새를 조사해 펴낸 '2009년도 겨울철 조류 동시 센서스'를 보면, 수도권에도 '철새 명소'라 할 만한 곳이 적지 않다. 서울·인천·경기도를 가리지 않고 곳곳에 새들이 찾아오는데, "아는 만큼 보인다"고, 사전 조사를 많이 하고 나설수록 더 많이 즐길 수 있다.
◆철새들 너울거리며 비상하는 안산 시화호
경기도 안산시 시화·반월산업단지 앞에서 서해를 향해 펼쳐진 시화호는 수도권 탐조의 최고 명소다. 작년 1월에는 사흘 동안 61종 4만여 마리 철새가 관찰됐다. 수면을 박차고 날아오르는 철새 사진의 단골 '포토존'이기도 하다. 청둥오리·흰뺨검둥오리·붉은머리오목눈이(뱁새)처럼 도심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새부터, 멸종위기종인 큰고니·흰꼬리수리·말똥가리까지 다양한 새가 몰린다. 시화호에서 더 남쪽으로 내려간 대부도와 화성시 장안면 일대 화성호·남양만·남양호에서도 철새를 관찰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다.
오이도 부근에서 시화호를 바라봤을 때 오른쪽 대부도 방향으로 뻗은 방조제와 왼쪽 내해(內海) 쪽으로 펼쳐지는 방조제 양쪽 모두에서 철새를 관찰할 수 있다. 다만 안산시의 환경단체 '시화호 생명 지킴이'에 따르면 최근 혹한이 찾아왔을 때 오른쪽 방조제를 따라 수면이 얼어붙는 결빙 현상이 좀 있어 철새 관찰이 어려웠다고 한다. 새들도 물이 얼고 바람이 너무 매서우면 따뜻한 곳을 찾아가기 때문에 관찰에 나선 당일의 날씨를 잘 읽어야 한다.
외국에서 흔히 탐조(探鳥·birdwatching)라 부르는 새 관찰에는 몇 가지 준비물이 필요하다. 겨울바람 맞으며 강둑이나 벌판에 서있어야 하니 따뜻한 옷은 필수다. 다만 시각이 예민한 새들을 배려해 문양이 화려하고 바람에 심하게 펄럭대는 옷은 피하는 게 좋다. 그다음 중요한 것은 쌍안경이다. 대부분의 탐조 명소는 하천·호수·바다를 끼고 있어 먼 수면에 있는 철새를 관찰하므로, 무리 속 새를 자세히 보려면 쌍안경이나 '필드스코프'라 불리는 커다란 망원경이 필요하다. 다만 필드스코프는 초심자가 구입하기엔 고가의 제품이 많으므로, 8~10배율 정도 쌍안경을 마련하면 무난하다. 조류도감과 무슨 새를 언제 어디서 봤는지 기록할 수첩·필기도구 역시 필수품이다.
◆재두루미·황오리 기다리는 김포 홍도평야
서울 강서구 개화동에서 고양시·김포시·파주시로 이어지는 한강 하구 일대도 철새 관찰하기 좋은 곳이다. 그중에서도 김포시 걸포천 부근 홍도평야는 재두루미와 황오리를 관찰할 수 있는 게 특색이다. 윤순영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은 "200m 정도의 지근거리에서 재두루미를 볼 수 있는 것이 큰 매력"이라며 "홍도평야에서 흔히 보이는 황오리도 인천 송도·강화도 정도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새로, 남부지방에서는 관찰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031-988-4119)에서 이곳 철새들을 위해 1주일에 400㎏쯤 먹이를 뿌려주고 있는데, 3~4가족을 모아 15명 이상 단체를 구성한 뒤 협회측에 요청하면 전문가와 함께 철새 먹이주기에 나설 수 있다.
윤 이사장은 홍도평야의 장점으로 주변의 풍광을 함께 즐길 방법이 있다는 것을 꼽는다. 우선 김포대교에서 파주시 오두산 통일전망대까지 이어지는 자유로를 달리며 '철새의 군무'를 보는 것도 장관이다. 새들이 먹이활동을 나서거나 휴식을 취하러 돌아오는 오전 8~10시, 오후 4~5시에 자유로를 타면 상쾌한 기분을 내며 군무도 볼 수 있다.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 서해로 향하는 곳에 있는 김포시 월곶면 '애기봉'도 명소다. 민통선 군초소에서 방문 목적과 인원수 등을 신고한 뒤 애기봉 전망대로 향하면 된다. 가파른 길을 좀 올라야 하긴 하지만, 그 뒤 탁 트인 경치가 펼쳐진다.
그밖에 서울시 중랑천·탄천, 광주시 팔당호·경안천, 연천군, 양평군·여주군 일대 남한강, 가평군 일대 북한강, 파주시 임진강, 인천시 석모도·교동도·영종도 등도 수도권의 탐조 명소다. 다만 각 장소마다 시기별로 여건이 다르니 사전 정보를 모아서 가는 것이 좋다.
국립생물자원관에서 철새 이동경로를 연구하는 김성현 연구사는 "새를 보는 데도 예의가 있다"며 탐조 수칙을 지켜달라고 말한다. 수칙은 ▲'침묵은 금'이란 사실을 명심하고 새들 근처에서 소음을 내지 말 것 ▲새가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일정 거리를 유지하고 돌 등을 던져 날리지 말 것 ▲전문가의 조언 없이 야생 조류에게 먹이를 주지 말 것 ▲새 둥지, 특히 번식 중인 서식지에 지나치게 접근하거나 손대지 말 것 등이다. 병들거나 다친 새를 발견했을 때는 지역별 야생동물구조단체·치료센터에 알리고, 죽은 새가 있을 때는 국립생물자원관(032-590-7240)에 연락해 조언을 구하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