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패션업계의 전략은 자신을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는 아주머니를 공략하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그 집단을 아예 '머추어 레이디(Mature Lady·성숙한 여성)'라는 이름으로 구분하고 있다.
탤런트 이미숙(50)·최명길(48)·김희애(43)처럼 불혹(不惑)을 훌쩍 넘겨 어느덧 40~50대에 접어들었지만, 아줌마로 불리길 원치 않고 외모도 전혀 아줌마 같지 않은 여성들이다. 이들은 자식이나 남편을 돌보는 데만 삶을 투자하지 않고, 자신을 가꾸는 데도 오랜 시간과 돈을 들인다.
한때 패션업계는 20~30대 여성의 주머니를 공략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지만 2008년 무렵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40~50대 여성의 씀씀이가 이들을 뛰어넘었기 때문. '머추어 레이디'의 환심을 사야 성공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4050 머추어 레이디… 두툼한 지갑을 열다
제일모직이 2009년 봄 출범시킨 '르베이지(Le Beige)'는 40~50대 여성을 겨냥해서 만든 신생 브랜드다. 작년 한 해 매출만 125억원, 신세계 강남점 단일 매장에서만 25억2000만원어치가 팔렸다. 보통 한 해 30억원 매출만 넘겨도 업계에선 '성공했다'고 말한다. 제일모직 양희준 과장은 "40~50대 구매파워가 이 정도일 줄은 미처 몰랐다"고 말했다. '르베이지'가 흥행한 건 40~50대 여성의 숨은 욕망을 정확히 읽었기 때문. 20~30대 시절 세련된 외모와 취향을 자랑했던 여성이라면 40~50대가 돼도 여전히 아가씨처럼 보이고 싶어하리라고 판단했고, 가능한 한 이들을 날씬하고 세련되게 보이게 할 원피스와 재킷을 대거 선보였다. 주요 제품 색상은 이름처럼 베이지색과 회색, 그리고 검정. 나이 든 여자는 화사한 색깔을 좋아한다는 편견을 깨고 도시적인 색채를 선보인 게 주효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보티첼리' '앤디앤뎁' 같은 고가 브랜드부터 '디아체' '라젤로' 같은 중저가 브랜드도 '머추어 레이디'를 공략하기 위해 시장에 뛰어들었다. 탤런트 김미숙(51) 등을 모델로 내세워 광택이 있는 트렌치코트, 니트 스커트 같은 아이템을 홈쇼핑 위주로 판매하는 식이다.
한때 취향에 맞는 브랜드가 없어서 고민하던 '머추어 레이디'의 지갑은 어느 때보다 활짝 열려 있다. 브랜드 컨설팅 전문업체 'PFIN'이 통계청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한 보고서를 보면, '마음에 드는 옷을 발견하면 계획에 없어도 바로 산다'는 40~49세 여성은 2008년엔 23%에 그쳤지만 2009년엔 50%로 크게 늘었다. '나 자신을 꾸미는 데 들이는 돈이 아깝지 않다'고 대답한 40~49세 여성 역시 2008년엔 24%였지만 2009년엔 45%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반면 같은 대답을 한 25~29세 여성은 2008년 52%에서 2009년 59%로 소폭 상승했다.
◆20~30대 브랜드도 '머추어 레이디' 눈치… 속옷업계도 긴장
20~30대 같은 젊은 층을 겨냥한 브랜드도 최근엔 머추어 레이디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감각적이고 유행에 민감한 40~50대 여성이라면 숙녀복 매장보다 20~30대 전용 매장에서 옷을 더 많이 살 것으로 판단, 이들의 체형에 맞는 66~77치수의 옷을 늘리기 시작한 것. BNX·탱커스·톰보이·베네통 등이 대표적이다.
속옷 업계도 이들 여성을 위한 라인을 따로 출시하기 시작했다. '비비안' 상품기획팀 양승남 부장은 "40~50대 전용 속옷은 2007년까지만 해도 전무했으나, 2008년 말부터 수요가 급격하게 늘어났다"고 밝혔다. '노블랑쥬' 같은 브랜드가 대표적. 몸매를 날씬하게 보이도록 다듬어주면서도 착용감은 편안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와이어가 없는 브래지어, 어깨끈과 날개가 넓은 바디셰이퍼 등이 주력 상품이다.